나는 아주 가끔 친정식구들이 나오는 꿈을 꾼다. 아직도 부모님에게 풀리지 않는 상처가 있는 것인지 꿈속에서 나는 부모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어느 날엔 꿈속에서 부모님에게 이렇게 외쳤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말해주세요."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 건지 옆에서 자고 있던 큰아이가 깰 정도였다. 정확한 딕션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으음으음 하며 소리를 질렀다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꿈을 꾼 내가 어떤 말을 했었는지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남편과 다툰 어느 날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싸움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부모님 댁에서 쓰시던 식물재배기를 딱 3개월만 쓰기로 하고 집에 가져와 3개월이 되었는데도 취소를 하지 않자 남편이 화가 나 그만 식물 재배기를 던져 거실 바닥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부모님이 렌탈로 사용하시던 식물재배기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으신다하여 취소를 하려다 집에서도 사용해보고 싶어 집으로 가져왔었다. 가져오기전 남편은 딱 3개월만 사용하고 반납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남편에게 겨우 동의를 얻어 가져와 사용을 해보니 취소하기가 아까워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다 남편이 화를 참을 수 없어 그만 던져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리 약속이라지만 매정하면서도 냉정하게 대하는 남편을 보며 화가 난 나는 핸드폰도 챙기지 못하고 지갑만 챙겨 밖으로 나와버렸다. 다시 핸드폰을 가지고 나오려 문을 두드리고 사정을 해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옆집에 소란으로 피해를 줄 수 없어 얼른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갈 곳은 딱 한 곳뿐이었다. 친정 부모님 댁이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연락도 할 수 없어 무작정 부모님 댁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부모님 댁으로 가는 도중 아이들 생각이 나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눈물이 마스크로 쏟아져 다 젖을 정도였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아무 연락도 없이 문을 열자 부모님은 황당해 하면서 당장 나가라 하셨다. 따뜻한 밥 한 끼라도 기대했던 마음과 달리 부모님은 한마음 한뜻으로 경찰을 부르든지 했어야지 왜 이곳으로 왔냐며 온갖 모진 말을 쏟아냈다.
눈물 섞인 실랑이가 이어지다 밥이나 먹고 가라며 밥상을 차려주셨다. 남편도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돌아올 것을 요청했다. 내가 기대했던 건 부모님의 따뜻한 말과 위로였는데 부모님은 나를 왜 밀어내려만 하셨을까. 지겹게 반복되어온 남편과의 싸움에 지칠 대로 지치셨던 것인지, 내가 짐짝처럼 느껴졌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독립'의 '독'자도 생각지 못했던 철없고 못난 자식일 뿐이었다. 부모님도 자식을 건강하게 독립시켜야겠다는 당신들만의 육아 철학이 없으셨던 건지, 부모님만의 대응 방식은 나에게 독이 되어 날아왔다.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었어도 여전히 의지하고 싶은 어린아이였다.
나는 궁금하다.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키우셨을지. 아무리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어도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였을 텐데 정말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셨을까? 단지 책임감 때문에 짐 같아도 버리지 못하고 옆에 끼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려웠던 그 시절 우리가 부모님에게 지친 일상에서 힘이 되는 존재는 아니었던 것일까? 존재만으로 귀하다는 말은 우리에겐 사치였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인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셨을 것 같다.
부모가 되어보니 그 마음을 아예 모르겠는 건 아니다. 부모 될 준비를 하지 않아도 부모가 될 수 있기에 살아가는 환경과 그에 따른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이라 느끼거나 혹은 불행이라 느낄 것이다. 조금은 긍정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바라보았더라면 자녀들과 함께 행복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려 했을 텐데, 부모님에게 삶은 단지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었다면 부모님의 마음엔 자녀인 우리가 어깨에 짊어진 무게로만 느껴졌을 것 같다. 아빠는 가끔 전화로 내게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니. 참 딱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도움은 주고 싶지만 줄 수 없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도움을 줄 수 없어 속상하셨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왜 내가 이렇게 젊은데 마치 인생을 다 살은 것처럼 앞으로 희망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말을 하실까? 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빠의 말에 "아빠, 나 아직 창창한 30대야. 왜 그렇게 말해? 나 다 안 살았어."라고 말할 뿐 아빠의 진짜 마음을 알지 못했다.
지금은 부모님의 말을 곱씹지 않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땐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당신들이 피해 받고 싶지 않을 뿐이라 여겼다. 부모님의 형제들과의 관계를 떠올리며 그렇게 추측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도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대화의 주제가 되다 보니 부모님의 진짜 마음을 알지 못헸다.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겠지만, 자신의 욕구나 느낌을 저버리고 자녀를 대할 땐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가끔 친정 부모님 댁에 가면 불만족스러워 보이는 표정의 엄마를 보곤 한다. 그런 엄마를 쓱 보고 지나가지만 엄마의 마음속엔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들과 이해받고 존중받지 못한 어린아이의 마음이 남아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퇴직을 하셨어도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고 즐기지 못하시니 여전히 삶은 고달프고 힘이 드는 것이리라. 자신들만의 욕구를 본인들조차 인식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으니 자녀들을 대할 때 편안치 못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라도 부모님이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남은 인생이 행복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꿈에서 부모님에게 외쳤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말해주세요"라는 말은 부모님에게 원했던 것이었지만, 이 글을 정리하며 '부모님 자신을 사랑해 주세요'라는 말로 부모님에게 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