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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Jan 11. 2024

엄격한 ISTJ 아빠,
그 속에 숨겨둔 따뜻함

아빠에게 전화가 왔던 어느 날 아빠는 통화를 마무리하며 "너도 이제 날개를 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글을 써 책을 내겠다 했을 때 글을 쓰느라 집안일이나 육아에 소홀해져 남편과의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을까 우려하며 아이들이 좀 더 컸을 때 하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던 아빠였다. 아빠가 걱정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갈등도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롭기만 한 것이 인생이 아닌데 늘 눈치를 살피며 맞춰 살라 하는 아빠의 말이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 아빠가 처음으로 내게 해주신 날개를 펴야지, 란 말은 덤덤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제 아빠가 내 마음을 아는 걸까.


10남매 중 장남이었던 아빠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지나오시면서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격해야 했을 것 같다. 가난했던 환경과 많은 동생들로 인해 꿈은 아빠에게 사치였을 것이다. 오직 안정만을 바라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안정된 노후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은 포기한 채 삶의 고난들을 참아내셨을 것 같다. 퇴직을 하시고 아빠는 지금 안정된 삶을 살고 계신 걸까? 내 집 마련에 대한 고민은 없어 몸은 편안하실 것 같은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뵙는 아빠는 어딘가 불편한 듯 보였다. 마음 한구석이 해결하지 못한 것들로 인해 불편한 걸까?


아빠는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들 외에는 활발히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으신다. 사람에 대한 의심도 많고 불편하면 만남도 거부하실 정도로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중요시하신다. 그래서 자식들이 왔다 가더라도 하루 이상을 같이 있기를 힘들어하신다. 아빠가 가장 행복해 보일 때는 소파에 누워 좋아하는 동영상을 볼 때이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말이다. 아빠에겐 안정감이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인데 그런 안정감을 빼앗은 나는 아빠에게 골칫거리였을 것 같다. 독립의 준비도 없이 쫓기듯 결혼을 했으니 탈이 많은 결혼생활에 부모님이 개입하시면서 얼마나 맘고생이 심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와주려 했다 혹만 붙여오는 격인 것 같았다. 자녀를 어떻게 독립시켜야 하는지 알지 못하니 불필요한 것을 버리듯 나의 관계까지도 갈라놓으려 하셨다. 결혼 후 부부싸움을 하고나면 우리의 투닥거림을 알게 된 아빠는 나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혼을 시켜주셨는데 매일 눈물바람인 나를 보며 걱정이 되어 잠도 푹 주무시지 못했을 아빠를 생각하니 이제와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불쑥 그렇게 힘들면 헤어져라 하셨던 아빠는 나의 행복을 위해 그렇게 말씀하셨던 건데 그땐 나도 혼란스러웠다. 철없이 자유로움을 꿈꾸다가도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부모님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여러생각들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게 맞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딸과 사위의 투닥거림을 보고 안정감이 주요 욕구였던 아버지가 느꼈을 불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헤어짐이 정답은 아니지만 그 마음 마저도 나를 위한 마음이었다고 생각하니 애처로우면서도 고맙다.      


자신의 마음이 편하려면 불편하게 하는 것을 떼어내야 했고, 그것이 관계에서도 적용이 된 듯하다. 관계라는 건 놓아버릴 수 없는 것인데, 혹여나 놓아버린다 해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괜찮다고 합리화하거나 잊어버리려 하는 것은 아닐까. 진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시간이 흐른다 해도 잊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내 마음이 언제 어떻게 불편한지, 내가 어떤 상황일 때 마음이 편안한 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하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마음 한가운데에 해결하지 못한 응어리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회피는 답이 아니다. 회피한다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아빠 본인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늘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계실 것이다. 특히 자녀와의 관계는 피할 수만은 없으셨던 것일까, 한 번씩 전화로 안부를 물으신다. 부모나 자녀 중 누가 먼저 전화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신경 써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도 하나의 욕구이지만 진짜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아빠의 주된 욕구인 안정감을 해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빠는 그 사람과 연을 끊어낼 정도로 연락을 않고 사신다. 아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아온 아빠는 사람을 경계하고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알고 보면 안정감을 위해서인데, 그 욕구를 모르면 차갑고 냉정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 아빠가 우리 가족 중에선 가장 따뜻하게 느껴진다. 셋째를 낳고 한참 힘이 들 때 힘들지?라고 물어본 사람도 아빠가 거의 유일했다. 가장 가깝다 생각하는 남편에게 조차도 힘들지?라는 다정한 말을 듣기 어려운데 아빠는 내게 한번씩 전화해 안부를 확인하셨다. 간혹 듣고싶지 않은 말들도 오갔지만 딸의 마음을 위로하고픈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다. 사실은 아빠가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힘들지? 그동안 고생했어."라고 말하고 싶은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격도 급하고 불같아 뭐든지 빨리 빨리 해치우려 했던 아빠는 그동안 가족들의 마음을 아는데에는 서툴렀다. 특히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맞춰 사시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차가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더 속이 깊은 아빠이다.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변을 바라보시면서 마음껏 활짝 웃으며 사셨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남은 삶은 후회없이 보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나왔던 시간을 곱씹으며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보다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지내시면 좋겠다. 사람들은 종종 힘든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닌 상대에서 찾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쉽게 판단함으로 상대를 비난하기 쉽다. 그런 마음마저도 내려놓으시고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며 남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시길 바란다.


내가 아빠에게 바라는 것은 나에게도 바라는 모습이다.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한 채 쉽게 판단하고 미워하고 싶지 않다. 남편에게 비난어린 말을 들으면 남편은 원래 그런사람이라 생각했고, 그 사람이 그런말을 하는 데 있어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빠또한 마찬가지다. 아빠는 의심많고 경계심 많은 피해받고 싶지 않은 그런사람이라 쉽게 판단했는데 알고보면 그 안엔 안정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힘들고 불안정했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보상받고 싶으신 듯 편안함을 우선순위로 두시는 것 같다. 힘들었던 원인이 다른사람에게 있다 생각하지만은 않으셧으면 좋겠다.


삶에 대한 이해는 누구나 다르다. 나 또한 부모님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고 관계를 피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젠 나의 상처도 관계도 직면하며 살아가려 한다. 내 자녀들도 불편하다 해서 힘들다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힘든일이 있다면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 엄마도 마음이 단단해 지는 과정에 있으니 함께 성장해 나가자고 말하고 싶다. 자녀가 가는 길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 힘이들 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고 외로운 맘에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빠도 분명 나와 같은 맘이셨을 거라 믿어본다. 자식에게 손을 내밀고 싶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해 헤매이셨을거라 감히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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