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날 더 사랑해 줘. 엄마 나를 더 사랑해 줘.'
첫째 아이가 자기 전 종이에 쓸 말이 있다며 공책에서 종이 한 장을 뜯었다. 아이가 잠이 든 후 책상에서 이 메시지가 쓰인 종이를 보게 되었다. 그동안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챙겨주느라 애쓴 아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날 더 사랑해 줘. 나의 내면 속 어린아이도 이렇게 외쳤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혼을 하고도 나는 어린아이였다.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였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예식장에서 드레스를 피팅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부모님에게 전화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결혼 전 시댁에서 마련해 주신 신혼집에서 지내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결혼식장에서 입어 본 드레스가 맘에 안 들어 도저히 입을 수 없을 것 같아 아침이 되자마자 부모님에게 전화를 했다. 다른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 말씀드리니 지방에 계신 부모님은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없었다. 직접 돈을 벌어 결혼 준비를 한 것도 아니고 양가 부모님 모두가 신혼살림에 집에 다 준비를 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드레스가 맘에 안 든다며 부모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결국 결혼식장 아래에 있던 드레스 대여 업체에서 비용을 들여 새 드레스를 예약했다. 결혼식장을 예약하면 드레스부터 메이크업까지 포함되어 있어 그 안에서 해결하면 되었는데도 다른 업체에서 드레스를 빌려 입었다. 남편과 상의도 없이 결정을 했다. 결혼을 앞둔 딸이 드레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여 한달음에 달려오셨던 부모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남편과 상의해 보라거나 드레스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지 결혼식장에 문의해 보라고 하셨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부모님은 사탕을 사 달라 조르는 아이에게 사탕을 사주 듯 나의 요구를 들어주셨다.
자녀는 어른이 되어도 부모님에게는 어린아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 역시도 부모님에게 어린아이였다. 다시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나를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어른이라 생각지 않으셨던 것 같다. 우는 아이를 어르듯 달래주셨다. 그 어린아이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음에도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남편과 다툴 때마다 부모님에게 전화해 하소연을 했다. 부모님은 속상하고 화가 나 그때마다 올라와 내 편이 되어주셨다. 나는 스스로 결정도 해결도 못하는 서툰 어른이었다.
결혼은 곧 독립이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남편과 나 둘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누군가 내 편에 서서 나를 편들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먼저 남편에게 사과를 하고 화해의 악수를 청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트러블이 나면 시어머니께서 눈치를 채고 중재를 해주시려 애쓰셨지만 상처받은 나만 보일 뿐 상대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배려심이 부족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생활 10년을 맞이했다. 10년이 흘렀어도 남편과 투닥거릴 때가 많았다. 한 번의 헤어질 위기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크게 싸울 때마다 부모님이 달려오셨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음을 숨기려 했었을 때도 아빠는 눈치를 채셨고 그때마다 속상해 잠못 이루셨다.
자라오면서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가치관이랄까 삶의 태도나 자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방법을 알지 못해 헤매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대화가 거의 없었다 보니 고민도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을 원하는지조차도 질문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입고 먹고 생활하는 모든 것에 있어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음에도 마음 한 쪽이 공허했다. 하고 있는 것들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렸다. 자꾸만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정서적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부분들이 내 삶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어른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몸은 성인이지만 마음은 작았던 그 아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고 부모가 되었어도 많은 것들이 서툴렀다. 그러던 중 심리학 공부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됐다. 내가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어쩌면 내 안의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아빠 엄마를 불렀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해달라 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는 글을 씀으로 자라고 있는 중이다. 글을 씀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자신을 찾아감으로 마음이 단단해졌다. 더 이상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이는 홀로 섬으로 어른이 되어간다. 지금 나는 자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