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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Sep 01. 2022

사계절 눈사람

눈사람에게 따뜻한 계절

   사계절을 산 눈사람이 말했다. 겨울을 좋아한다고. 겨울이 가장 뜨겁기 때문이라고 했다. 눈사람은 겨울에 태어나고 몸이 빚어지면서 느껴지는 살의 감촉과 온도가 다른 계절에는 느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이 좋았다.


   눈사람 하나 만들지 않고 겨울을 보내는 것이 아까워 밤중에 혼자 눈 쌓인 공원으로 걸어 나갔다. 월계동에 살 때에는 자주 혼자서 외출을 했다. 새벽에 카메라를 들고나가 해가 하늘의 색을 바꾸는 모습을 찍거나 푸른 새벽에 켜져 있는 하얀 가로등을 찍었다. 가로등 불빛은 희미해지다가 꺼졌다. 건물에 빛을 내리며 점차 이쪽으로 다가오는 밝은 하늘을 보면 지구가 정말로 동그랗고 그게 지금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햇빛을 골고루 받으려 몸을 천천히 굴리고 있구나 생각했다. 강가를 걸으며, 고가 다리를 건너며 새벽에 일어나는 것과 잠드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그 밤엔 눈이 내려서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단지 앞에는 택시 정류장이 있었는데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눈이 많이 내린 터라 택시가 한 대도 없었다. 나는 조심해서 눈 덮인 길을 밟으며 택시 정류장을 지나쳤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통화 소리가 신경 쓰였다. 그는 옷을 춥게 입었고 수화기 너머로 술에 취한 부정확한 말을 던졌다. 취한 것인지 이국에서 온 사람인지 둘 다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니 대화 내용이 다 들렸다. 집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보통은 싫지만 나는 아주 가끔 내가 여자로 보이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여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여자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쉽다. 그래서 초록불이 켜져도 건너지 않고 기다렸다.

   내가 있는 쪽으로 그가 휘청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휴대폰을 들이밀며 택시를 잡고 싶다고 했다. 택시를 호출하는 어플이 켜져 있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거기에 우리의 위치를 적어주었다. 그리고 호출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가 잘 타고 가는지 보려고 함께 택시를 기다렸다. 택시가 도착하자 그는 고맙다며 내 손을 덥석 잡았는데 그 손이 차가웠다. 그가 택시에 탄 것을 보고도 마음이 불편했다. 혹시 몰라 번호판을 외우며 공원으로 걸어갔다.


   나무들이 눈을 업어 키우고 있었다. 나무의 몸에 올라탄 눈은 제 몸이 불어나자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무에서 떨어진 눈은 계속 자라났다. 그 자리가 다른 부분보다 높이 솟아 있었다. 나는 어느 더미에서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공원 중앙의 의자와 가까운 눈더미를 선택했다. 손이 시렸다. 태어나면서 가장 따뜻할 눈사람을 생각하며 동그랗게 뭉쳤다.

    사람 집에  도착했는지 궁금했다.  방법은 없었다. 그도 종종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지만   없다. 그는  손을 잡고 따뜻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는 받은 것보다  것을   기억하는 편이지만 기억과는 무관하게 내가 전한 온기가 그의 일부분이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눈사람처럼.

   계절을 기다리기 위해 계절에 마음을 많이 심어두는 편이다. 어느 것은 오래 살고 어느 것은 금방 죽는다. 부지런히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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