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집

기숙사 일기

by 조연지

제발 나랑 같이 있어달라고 계단에 앉아 한참 떠들었습니다

내가 취하지 않았던 이유인데요 이유야 뭐가 됐든 버릴 겁니다

나는 사람을 그렇게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요

자고 나면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같이 누웠습니다


잃어버린 게 많았어요 도망간 사람들만 해도 너무 많았지

그런 건 하루아침에 찾을 수도 사러갈 수도 없잖아요

그렇다고 저의 도망이 정상참작 되진 않았습니다


나를 바꿔 먹으려고 침대로 들어갔어요

처음 만났어도 사람 몸은 따뜻해서 잠이 왔습니다 잠이 오니까 생각났어요

단지 사람이 필요했던 거라고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요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온순했어요 내 몸 위에서 내려와 옷을 입었으니까요

남자지만 내려왔으니까요 감사해야 했습니다 도망가는데도요

예상했던 거지만 잠들 수 없었습니다 이불 속이 조금 추워졌어요


내가 옷 입는 광경은 떠오르지 않고요 아침 바람이 스치는 것도 불쾌했습니다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게 내집이 아니고 엄마집이 아니고 할머니집도 아니어서 다행이었지요

언덕을 걸어 올라오며 학교를 지났습니다 사람 없는 주말이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어요

사실 몰라요 혼자 클럽 다니는 년이라고 수군거렸을지도요

샤워를 하고 나와 이층 침대에서 주말을 보냈습니다 없는 사람처럼 잠을 잤어요


한 번은 누가 목에 키스마크를 달고 왔는데 누가 그걸 짚어 물었어요

뭐긴 뭐겠어요 나는 그게 죽어가는 사람에게 찍히는 낙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랑과 잘 바꿔먹은 거라고 고쳐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손 들지 않았습니다(교수님, 그 애와 친한 사람은 여기 없어요)

안녕, 인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우린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안녕은 작별인사 할 때만

나는 잘 졸업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