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가 적힌 골목을 걸었다
너는 맞춰 보자고 했다
멀리서 커다란 한자를 먼저 읽고
조금씩 가까이 걸어가 작은 한글을 읽었다
나 아는 한자가 몇 없어
모르는 글자는 다음 글자에 의해 나타났다
칠, 기, 삼… 아, 운칠기삼?
어떻게 밟혔는지 심히 마모되어
못 읽는 글자도 있다
꿈에서 본 걸 적어두는 공책처럼
공책은 숨 쉬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다
직접 고른 자리도 아닌데
공책을 움켜쥐러 뒤척이는 동안
시간이 먼저
나를 움켜쥔다
꿈이 훼손된다
눈사람을 벗는 것처럼
이 문장은 어떤 장면에서 파생됐을까
눈사람
안에 들어있는 사람
을 떠올려본다
아유 손이 징그럽게 차네
손을 끌어 이불 밑에 넣는
할머니,
가끔은 내가 너무 많은 걸 가진 것 같아
눈사람은 차가워진 기억이 없고
나는 어떻게 내가 됐지?
공책처럼 누워
그 골목을 생각했다
여러 명의 네가 걸어 다닌다
멀리서
다 읽을 수 있는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