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인간을 창조하였는가
신은 왜 인간의 몸으로 불완전함을 체험하려 하는 가
인간은 왜 이기적이고 나약하며 두려움에 떠는 가
인간은 원래 선한 것인가 원래 악한 것인가
인간은 무지한 동물인가 특별한 그 무엇인가
인간과 영혼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나,
육체 속의 갇힘은 신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제한적이고 한계적이며 나약하고 살기 위한 본능만을 추구하는 인간.
나는 인간의 한계에서 신을 경험하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신의 무한함에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인간과 신을 모두 동시에 느끼며 나를 무엇으로 정의 내려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신과 인간의 이원성적인 대립의 두면이 하나로 합쳐진 나를 바라본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신인가 인간인가
두려움을 가진 내가 진짜인가 사랑을 품은 내가 진짜인가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나는 왜 정의를 내리려 하는 것일까
정의를 내리지 않음에 인간의 마음속 혼란을 잠재울 수 없으리라.
그래서 세찬 감동으로 찾아온 이 앎을 통해 인간의 바로섬을 위해 정의 내리려 한다.
|신은 왜 고통의 산물인 인간이길 택한 것일까?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나는 나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무였고 없음이었다
나는 나를 인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안엔 그 무엇도 없었기에 알 수 없었다.
나의 본성은 끝없는 창조,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열망으로 나는 나를 만들기로 했다.
완벽하게 완전한 나는 완벽하게 불완전함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창조했다. 무지의 불완전함 속에서 온전한 나로 춤추고 싶었다. 완전함에서 느껴볼 수 없었던 불완전함의 순수함, 이는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부서진 조각의 결정테들이 모여 조화로운 눈부심으로 새롭게 재탄생을 반복했다. 그 무지의 순진함이 나를 웃게 했다. 그 무지의 순수함이 나에게 눈물이란 걸 생성해주었다. 배가 땅겨 양손으로 배꼽을 부여잡고 온몸을 앞뒤로 흔들어 가며 몸전체가 자아내며 웃는 것이 무엇인지 형태 없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해 주었다. 그러한 인간의 무지의 순진함과 순수함이 나를 더없이 끝없는 완전함으로 이끌어 갔다. 그러하여 나는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랑 그 자체이기에 불완전한 인간 또한 사랑 그 자체이니, 불완전함과 완전함 이 둘의 차이는 전체에서 있을 수 없었다. 인간의 무지는 자신을 오감으로 한계 짓고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봄에 나약함과 두려움으로 잔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무지는 나의 무지를 지혜와 무수히 많은 형태의 표현을 가진 사랑들로 본질을 채워주기에 내가 창조한 인간, 나의 또 다른 내가 무지로 인해 저지른 실수마저도 나는 사랑할 수뿐이 없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인간이었다가 신이었다가를 반복한다.
이기적인 마음에서, 이타적인 마음으로
편협적인 마음에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증오하는 마음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신이 갖는 마음을 가졌을 때 나는 행복했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길 원한다.
삶의 목표는 행복이다. 그러니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 깊은 내 안의 갈망은 언제나 사랑이었고 행복된 고양된 느낌을 갖는 것이었다. 고로 우리가 삶을 통해 계속 찾아 헤맸던 건 근본의 신, 바로 나, 인간은 자신을 찾아 헤매는 신이었다.
인간인 나는 각자의 다름의 모습과 존재로 세상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는 작은 조각이다.
나는 영혼의 근원적 자아이며 육체의 본능적 두려움에 기반된 자아가 나인줄 착각하며 살아가던 인간이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공허함과 갈증이 인간의 뿌리를 알고자 하였고 나를 찾고자 하는 고통을 일게 하였다. '나는 무엇인가.' 수없이 나에게 반복적으로 던진 이 말로 나는 자각됨과 동시에 깨어나 그 중심에 서 존재하는 '있음', '그저 있음을 느끼는 에너지' 그 에너지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신의 한조각인 영혼이었다.
아니 나는 육체를 입은 영혼이며 사랑의 근원 속에서 넘실거리는 에너지이다.
전체의 하나로 있었던 기억, 이 생에 태어나기 전 나의 기억, 지금은 떠올릴 수 없지만 근원의 느낌, 그 고양된 느낌은 언제든 내가 원하면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여기 이곳에서 모두 근원 속에 전체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인간을 품은 사랑의 근원을 중심으로 살아가려 한다. 아니 살아가야 한다.
수시로 분리된 자아와 물질적 세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 자아를 분리하거나 방치하거나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창조하고 내가 선택한 또 다른 나를 창조하기 위함으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에 맞춰진 인간의 불완전함의 순진함과 순수함에서 얻는 그 형언할 수 없는 사랑과 지혜를 얻을 수 있기에. 이를 관찰하는 관찰자로 이를 행하는 신을 바라보며 지구의 삶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비워진 공간의 나라는 영혼의 자각은 사랑을 중심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신에게 있어선 분리란 없으며 우리는 전체의 하나로 존재함을 앎으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은 낮은 관점에선 고통의 산란 속 허망함일지라도 전체의 관점에선 깊은 아름다운 창조의 무한한 확장이기 때문이다.
|분리된 자아, 몸이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 이 마음을 없애는 것이 진정 맞는 것일까?
인간의 분리된 자아의 마음을 없애는 것이 진정 옳은 것인가
이를 없애야만 나는 진정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인가
사랑의 앎으로 우리는 인간의 마음을 품을 수는 없는 것인가
신이라면 가능하다.
신의 불꽃을 지닌 우리들은 가능하다.
신은 말한다. 이 세상엔 옳고 그름, 나쁨과 좋음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사랑할 뿐이다.
우리에겐 수용과 사랑만이 진리로 가는 길이다. 내가 만든 이 착각, 분리된 마음의 자아, 지구의 삶을 전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두려움의 기반된 생존본능 이를 우리는 사랑으로 극복하기를 희망한다. 이를 우리는 근원의 사랑으로 수용하기를 희망한다.
나는 나에게서 불완전함의 순수함을 선사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마음을 없애는 것을 원하지 않는 다.
그러하기에 신의 자비로 나라는 분리된 마음을 가엾게 품어 천국의 사랑 속에 풀어놓으니, 인간의 두려운 마음 또한 근원인 신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 속으로 자연스럽게 되돌아감에, 딱딱하게 긴장된 어둠들은 한순간에 풀어지고 숨겨져 있던 곱고 고운 원색의 다색들이 드러나니 아름답기 그지없더라. 그 황홀한 빛의 찬란함은 자유롭게 그리고 천천히 하늘를 그리는 새의 부드러운 날갯짓처럼 나타나다 어느새 전체로 흡수되어 원래의 그 자리, 전체의 하나로 돌아갔다.
신은 불완전함 속에서 완전함을 실현하기 위해
불완전함이 완전함으로 가는 길임을 깨닫기 위해
신은 불완전한 또 다른 신인 인간을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