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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27. 2021

부침개 익어가는 시간

요 며칠 계속 비가 왔다.


  요리를 잘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요리를 못하는 딸은 비 오는 날만 되면 자꾸 부침개가 먹고 싶었다. 


  마침 부추가 한 줌 남아있었고, 부침가루도 넉넉히 있었다. 신혼 시절, 몇 번이고 도전했다가 실패한 부추전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왠지 자신이 있었다. 시켜먹자는 남편에게 '걱정 말라'라고 말하며 생각했다. 이번엔 잘할 수 있다고.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며 불은 '약불'로 조정했다. 치이이익- 기름과 반죽이 만나 만들어 내는 특유의 냄새도 스멀스멀 올라오며 그럴싸했다. 겉모습도 노릇노릇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남편에게 가져다주며 생색을 내니 남편도 덩달아 신이 나 보였다. 딸아이 먹일 크기로 적당히 숭덩숭덩 자른 후, 간장에 찍어 한 입 먹는 순간, 직감했다.


  또 망했구나.


  왜 내 것은 맛이 없을까? 한참을 생각하며 먹고 있는데, 남편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이거 약간 덜 익은 것 같아. 밀가루 맛이 나...”


  그랬다. 내 부침개는 약간, 덜 익었다.


  큰소리쳤지만 사실 자신이 없었다. 기름은 얼마큼 부어야 하는지, 또 반죽을 어떻게 펼쳐 주어야 하는지, 언제 뒤집어야 할지 잘 몰랐다. 거기다 이번엔 망치고 싶지 않은 욕심에 가만히 있질 못하고 수시로 뒤집어 보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그대로 두면 알아서 노릇노릇해질 기회가 코 앞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급한 마음에 뒤집개로 휙, 뒤집어 버렸다. 부침개는 역시나 설익어 있었다.

  

  난 성급했고, 조바심이 났고, 걱정이 됐다. 그래서 자꾸 부침개를 들들 볶았다. 부침개가 만들어지는 시간, 부침개가 스스로 익어갈 시간을 주지 못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성질이 급했다. 부모의 ‘급한 성질’을 빼다 박은 탓에 예전부터 뭔가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바로바로 해결이 되어야 했다. 다음 달에 있을 행사도, 6개월 후에 있을 친구들과의 약속도 전부 바로바로 계획을 세워야 했다. 가끔가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땐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를 괴롭히곤 했다.


  나와 정반대의 성격인 남편과 유일하게 싸웠던 것들도 바로 이런 ‘성질’때문이었다. 급한 성미,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 내는 성질은 매사 여유로운 남편과 부딪혔다.


  정 반대 성향의 남편과 살아가는 일은 ‘기다리지 못하는’, ‘성질 급하고’, ‘조바심치며 사는’ 내 삶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과정이었다. 내가 맞다며 고집부리던 모습은 옅어졌다.


  정시에 도착하지 않은 버스에 흥분하지 않고, 지하철을 놓쳐도 다음 것을 기다릴 줄 아는, 일주일이나 늦게 도착한 택배에도 컴플레인을 걸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점점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나도 조금은 넉넉한 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그런데 모두 다 착각이었다.

  당장 나는 이 사소한 부침개가 익어가는 시간 조차 주지 못했던 것 아닌가. 끽해야 1~2분 하는 그 시간도 견디지 못하니, 내가 진정으로 여유로워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 싶다. 아직은 멀어도 너무 먼 이야기 아닐까 싶다.



  "부침개 좀 부쳐 놓지?"


  아주 어린 시절, 비가 오는 날이면 아빠는 '부침개'를 찾았다. 툭 던진 아빠의 말에 "먹고 싶으면 직접 해 먹지"라며 투덜대면서도 엄마는 부지런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침개의 냄새는 빗소리를 타고 흘러 흘러 온 집안을 날아다녔다.


  둥그런 개다리소반에 올려진 둥글넓적한 부침개. 기름 냄새가 어우러진 바삭한 식감이 좋아 우리 가족은 너 나할 것 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 사이 엄마는 급히 두른 앞치마에 물기를 슥슥 닦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쓸어 넘기며 계속 부침개를 해다 날랐다. 한 번은 미안한 마음에 엄마 곁에서 구경한 적이 있다.


  지글지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부침개가 탈 것 같았다.


  엄마, 이제 뒤집어야 하지 않아?라고 하니,

  엄마는 아직 아냐,라고 답했다.

  엄마, 엄마 이제 탈 것 같아,라고 다시 말하니,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말없이 부침개를 탁, 뒤집었다.


  딱 한 번, 뒤집었을 뿐인데 부침개는 완벽한 색을 뽐냈다. 그러면 엄마는 벌건 얼굴로 말했다. 지금, 지금이야,라고.


  그렇게 엄마의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는 시간만큼을 기다리면, 부침개도 노릇노릇 익어갔다. 기다려 준 만큼, 딱 그만큼 맛있게 익어갔다.



  부침개를 부치며 인생을 배운다.


  때를 알고 기다리는 것.

  기다릴 줄 아는 것.

  아직은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




  오늘도 비가 온다고 한다.

  종일 내리는 비를 보며,

  나는 생각할 것이다.


  부침개를 먹고 싶다고.

  오늘은 꼭, 기다려 보고 싶다고.

  녀석에게 꼭 알맞은 시간을 주겠다고.

  우리 엄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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