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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l 29. 2021

물에도 향기가 있다는 것

  "이 물만 해도 그래. 우리 집은 대수가 보리차 좋아해서 물 끓여 먹거든? 근데 봐봐. 밥상에 물 한잔 올려놓으려면 얼마나 많은 절차가 필요한지. 물 끓여야지, 식혀야지, 주전자 씻어놔야지, 물병 소독해야지, 병에다 다시 물 담아야지, 냉장고에 넣어야지...... 근데 그렇게 끓인 물이 또 이틀을 못 가. 예전에 물 마실 땐 아무 생각 없었는데. 참,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맞아. 나도 그랬어. 우리 집도 그랬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운 여름을 식혀 주었던, 엄마가 차갑게 식혀 냉장고에 넣어둔 보리차 한 잔이.


   어릴 땐 몸을 쓰며 노는 놀이도 좋았다. 놀이터에서 한창 모래를 만지작 거리며 놀고 있으면 하나둘씩 친구들이 모였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신나게 놀았다. 숨바꼭질, 미끄럼틀, 그네 타기, 시소 등등 두서없는 놀이를 실컷 하다 보면 땀범벅이 된 머리칼은 어수선해지고, 몸은 끈적끈적해졌다.


  조금 있다가 다시 만나자, 는 기약 없는 약속 후에 집에 들어서면 엄마는 얼른 손을 씻고 오라고 말하며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주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과, 뜨끈뜨끈 해진 나의 몸은 보리차 한 잔에 퓌 시식 꺼지는 불씨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원체 물 마시기를 좋아하던 나는 연거푸 두어 잔을 더 마시곤 캬, 시원하다, 라는 말을 끝으로 컵을 내려놓았다.




  30년 전, 생수가, 정수기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 집의 물맛은 보리차였다.

  밥을 먹을 때에도, 잠 자기 전에도, 목욕탕을 다녀와서도 늘 냉장고에 가득 있었던 보리차는 우리 집을 '대표'하는 냄새였다. 부지런한 엄마는 언니나 내가 "엄마, 물이 없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커다란 들통을 하나 꺼내서 물을 끓여 놓곤 했다. 팔팔 끓는 물에 다가갈세라, "이건 뜨거우니 절대로 가면 안 된다"며 잔소리에 잔소리를 얹고서 집안일을 하던 엄마 덕에 우리 집은 항상 '보리향'을 맡으며 계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집집마다 달랐던 물 맛을 맛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놀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삼대가 살던 친구 집은 진한 결명자차를 따라 주었고, 외동딸로 통통 튀는 성격이 매력이었던 친구 집은 아주 연한 맛의 보리차를 내주었다. '재밌게 놀다 가라'며 꽃무늬 쟁반 위, 유리컵에 가득 담긴 물을 내어 주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너도 우리도 다 같구나. 같게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안정감 따위를 느꼈던 것 같다.


  우리 집을 가득 채운 보리향이 사라진 것은 90년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가 아는 정수기 외판원 아줌마가 "이제는 정수기로 물을 마시는 시절"이라며, 아빠를 설득했고 사람 좋던 그는 당시 280만 원이었던 정수기를 집에 들였다. 이제 물을 끓였다 식히지 않아도 된 엄마는 '정수기'를 신줏단지 모시듯 매일 같이 닦고 또 닦았다. 마치 얼마나 정수기를 깨끗하게 청소하느냐에 따라 물맛이 달라진다고 믿는 것처럼.


  나는 어쩐지 정수기의 물 맛이 좋지 않았다. 시원하긴 하지만, 맹숭맹숭한 그 맛이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고 보리차를 먹고 싶다 말했지만, 버튼만 누르면 맑은 물이 원하는 만큼 흘러나오는 편리함을 맛본 엄마는 한 두어 번 보리차를 끓여주다가 말했다. "얘는~ 촌스럽게. 요새 누가 물을 끓여 먹니?"


  그렇게 수년 간 사라진 보리차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나의 출산으로 우리 집에(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와 남편의 집에) 갑자기! '신생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많은 육아책에서 4~6개월 즈음부터는 '보리차'를 먹여도 된다고 말했다. 육아 선배인 언니도, 맘 카페의 댓글들도 '보리차'를 먹여도 된다고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보리차... 보리차... 생각만 해도 좋았다.

  향긋한 보리 내음이 가득 채운 집안, 그리고 옹알대며 귀엽게 누워있는 아기, 그 아이에게 구수한 보리차를 젖병에 담아 먹이는 내 모습의 끝엔 행복한 표정이 담겼다. 게다가 그 보리차는 강제로 지워진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아닌가. 정수기를 거부하던 내가 끝끝내 되찾지 못한 추억의 물. 90년대의 맛. 


  망설임 없이 보리차 티백을 구매했다.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 팔팔 끓인 후, 티백 하나를 넣어 식혀 두었다. 너무 차가우면 안 될 것 같아 적당한 온도를 맞추고 맞춰, 가장 알맞은 온도를 찾아내어 젖병에 담았다. 목말라 보이던 녀석에게 주니, 한 입 먹더니 거부한다. 그래, 처음엔 좀 쓰지 하지만 먹다 보면 얼마나 구수한데, 라며 몇 번 더 시도했지만 녀석은 입을 앙 다물고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단 한 번도 녀석은 생수 아닌 물을 먹지 않았다. 결국 우리 집에서 보리차는 다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두근두근 내 인생>의 한 구절에 갑자기 보리차가 당긴 것이다. 찬장을 뒤져보니 몇 년 전에 산 결명자차 티백이 있었다. 아쉬운 대로 끓여 먹으니 생각보다 진하고 고소한 게 먹을만했다. 일하던 남편에게도 건네니 "여름엔 이런 게 맛 좋지"라며 꿀떡꿀떡 마신다. 하지만, 나의 딸은 온몸으로 거부하며, 말했다. "맛이 안 좋아."


  괜스레 섭섭한 마음에 몇 번 더 권했지만, 손사래 치다가 물병이 쏟아질 뻔 한 위기를 넘기곤 포기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거부한 거면, 이건 진심이란 생각이 들자 더 이상의 권유는 '강요'가 되겠다 싶어 멈춘 것이다. 그리곤 며칠을 생각했다. 나와 딸의 물 맛은 왜 다른가. 하고, 왜 나는 딸과 같은 물 맛을 공유할 수 없는가 하고.




  나의 첫 물맛은 보리였고, 첫 물의 향기는 '보리 내음'이었다. 사계절 내내 집 안을 가득 채운 보리 냄새와 특유의 맛은 내 유년시절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엄마의 부지런함이 더해져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언제나 냉장고의 안주인처럼 당당하게 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그런 존재.


  딸의 첫 물맛은 '무미'였고, 첫 물의 향기는 '무향'이었을 것이다. 살아온 4년 동안 집 안에선 어떤 물의 향기도 나지 않았을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균일하면서도 깨끗한 물의 맛이 녀석의 1,000일을 살찌우게 해 주었겠지. 버튼을 누르면 쉽사리 나오는,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존재.


  그렇구나. 나와 딸이 살아온 삶은 다르구나. 그래서 당연한 거구나. 녀석은 보리의 맛이 결명자의 맛이 낯설고 어색했을지 모른다. 대신 맑고 시원한 생수의 맛이 훨씬 좋았을지도. 내게 좋은 것이, 내 배 아파 낳은 딸에게는 안 좋을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또 한 번, 배운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엄마는 나를 채운 추억의 물, 90년대의 향기를 딸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편리하게 나오는 물맛도 물론 좋지만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먹는 구수한 보리차의 그것도 꽤나 좋은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기다리는 동안 집 안에 가득 퍼지는 향기는 먹지 않아도 그 맛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그러다 결국은 보리차 한 잔으로 엄마의 유년 시절을, 외할머니의 오랜 정성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도.


  단, 지금처럼 강요 같은 권유가 아닌, 조금씩 천천히 스며듦으로 인해서.


  그러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많이 부지런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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