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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03. 2021

뭐? 가지로 밥을 짓는다고?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엄마'가 되자 문제가 생겼다.


  매일같이 밥상 위를 채우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 된 것이다. '아내'가 되었을 땐 나물을 좋아한다는 남편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흘렸지만 엄마가 되니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분유와 이유식을 지나 이제 진짜 '밥'을 먹여야 할 때가 되자 우리의 '밥상'이 바뀌어야 했다. 떡볶이, 치킨을 돌쟁이에게 줄 수 없기 때문.


  콩나물, 두부, 시금치, 아욱 등 익숙한 재료로만 요리를 하다 문득 '가지'가 눈에 밟혔다. 가지... 여름이 되면 우리 집 밥상에서 빠지지 않던 가지무침이 떠올랐다. 언젠가 남편이 "나 가지 좋아하는데"라고 지나가듯 한 말도 귓가에 스쳤다. 엄마가 여름엔 가지가 제철이라며, 찜기에 가지를 쪄서 양념해 먹으면 맛이 좋다고 했던 기억도. 더불어 친정에 가면 엄마의 가지무침을 열심히 먹던 남편의 모습도.


  솔직히 난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컹한 식감, 그리고 애매한 맛이 정말 별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밥상에서 아예 뺐던 것은 아니다. 남편이 좋다고 하니 몇 번 사서 엄마의 방식대로 요리를 해보았던 적도 있다. 그런데 양념의 문제인지 손맛의 문제인지 생각보다 맛이 나지 않았다. 한 번은 엄마가 아예 찜기에 쪄서 준 적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준 가지인데도 내가 하면 꼭 망쳤다. 여름의 건강한 맛이 아니라 흐물흐물, 물렁물렁, 맹숭맹숭. 정말 최악이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나의 취향'이 흐려지는 것이기도 하다. '아내'일 땐 지켜냈던 나의 취향은 '엄마'가 되고 많이 바뀌었다. '까탈스러운 편식쟁이'인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죽도록 싫어하던 가지를 장바구니에 담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요리를 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싫어하는 재료로 요리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요리를 하는 과정 내내 냄새와 맛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솔직히 예전처럼 그대로 오래도록 냉장고에 방치한 후에 "어이쿠 가지가 상했네.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까짓 거 가지 3개. 안 먹어도 그만 아닌가.'

'먹고 싶으면 직접 해 드세요!라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며칠을 합리화하다 결국 꾸역꾸역 가지를 꺼냈다. 앞으로 세상의 다양한 맛을 알아가려면 어릴 적 밥상이 건강해야 할 것 같았고, 몸에 좋은 가지를 먹이면 더 좋을 것 같았고, 사실 그동안 결혼하고 제대로 된 밥상 한 번 차려준 적 없는 남편에게 정성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엄마의 레시피를 포기했다. 그것은 내가 매번 실패했던 것이었으니까. 매일 쓰던 오답노트 대신 새로운 풀이를 찾아내 보고 싶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가지 밥을 검색했다. 가지 밥... 가지로 밥을? 조합이 이상했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해 먹는다면 맛이 있겠지, 하며 스크롤을 내리니 유명한 레시피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백종원 가지밥 만들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간장, 가지, 돼지고기, 파, 그리고. 쌀만 있으면 되는 레시피여서 부담이 없었다. 마침 돼지고기 다짐육도 있었고 가지도 넉넉히 3개나 있었다. 레시피를 정독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인생 처음 제대로 도전한 가지밥. 그 이름도 생소한 '가지로 밥 만들기'가 시작된 것. 괜히 으스대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하던데, 라며 레시피를 변형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따라 했다.


'이게 밥이 돼?'

'으... 느끼하지 않을까?'

'가지가 왜 이렇게 수분이 안 빠져?'

'망했다. 망했어.'


  라는 불안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지만 꾹 참고, 몇 번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볶은 가지를 불린 쌀에 담긴 밥솥에 넣어 백미 취사를 눌렀다. 그리고 30분 후, "쿠쿠가 맛있는 백미밥을 완성하였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열어본 밥솥엔 시커멓게 변한 가지와 어우러진 밥이 보였다.


  주걱으로 휘휘 저으니 아래 부분엔 살짝 그을려 탄 것 같아 보였다. 망했구나, 끝이구나, 얼른 다시 밥을 지어야지 하는 마음 반, 혹시나 하는 마음 반으로 살짝 먹어보니 의외의 맛이다. 달큰 짭짤하며 먹을만했다. 내가 싫어하는 가지의 그 물렁함은 밥과 어우러져 썩 괜찮았다. 남편에게 얼른 맛을 보여주니, 남편의 눈이 번쩍 뜨인다.


"오! 이거 맛있는데?"


  양념장을 곁들이니 감칠맛이 두 배가 되었다. 밥공기에 한 가득 담았던 가지밥은 금세 동났다. 여느 때보다 신난 남편의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맛도 맛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로 요리를 해준 것이 고맙다며 "앞으로 가지를 이렇게 해 먹으면 되겠다"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미안해졌다. 사실 남편'보다 '딸'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게 들킬까 애써 웃었다.


  가지밥의 위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엔 색깔이 이상하다며 입에도 대지 않던 딸내미가 김밥용 김에 가지밥만 싸서 주니 그건 또 맛있다고 잘 먹는 게 아닌가. 평소에 같은 반찬이 두 번 연이어 나오면 절대 입에 대지 않는 녀석이다. 아침에 카레면 점심엔 콩나물국이어야 한다. 또 입맛은 얼마나 까다로운지 예쁜 색이 아니면 먹질 않는다. 파스타, 고기전, 동그랑 땡 등 다른 아기들이 잘 먹는다고 한 것들도 우리 딸은 전부 NO! 그런데 가지 밥을 넣어 싼 김밥, 그러니까 '가지밥 김밥(?)'은 두 끼 연속 맛있다며 잘 먹었다.

   "엄마! 냄새 좋아요!"라고 덧붙이면서.


  가장 싫어했던 재료로 의외의 성공을 거두니 좋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렇게 좋아할 것을 나는 그동안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우리 엄마의 방식대로 했는데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우리 딸은 새로운 재료는 싫어할 거라는 이유로 하지 않았던 것이 미안해진다.




  나는 왜 그토록 가지를 거부했을까. 아무리 입맛이 보수적이어도 커가면서 안 먹던 음식도 먹게 마련인데 나는 왜 그렇게 가지를 밀어냈을까. 생각해보면 내 머릿속엔 '엄마의 가지무침'만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 엄마가 무쳐준 가지의 맛이 너무 강해서, 그때의 그 느낌과 감정이 그대로 남아 '나는 가지를 싫어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트에서 가지를 보면 '저건 내가 요리 못하지'라고만 마음을 닫았던 것이 아닐는지.


  나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다. 뭐든지 익숙한 방식대로 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먹던 음식만 먹고, 가던 길만 간다. 배달을 시켜도 늘 시키던 곳에서만 시킨다. 안정감이 있어 좋지만 사실상 도전하는 재미는 없이 살았다. 도전은 실패를 불러오는데 그 실패를 감당하는 게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가지무침'이 아닌 '가지밥'을 맛있게 만들고 나니, 이젠 모든 재료를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생겼다. 정해진 길에서 살짝 벗어나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직은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 나 스스로 참신한 레시피를 만들 자신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엄마가 나에게 차려준 수많은 밥상만을 고수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동안 밥상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푸짐해야지, 이렇게 한국적이어야지,라고 생각한 탓에 엄마의 맛을 연구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던 적이 많다. 그때마다 난 역경을 해쳐나가기보단 손쉬운 좌절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요리가 더 두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이젠 그 '틀'을 조금씩 깨 보려고 한다. 실력이 뛰어난 엄마의 밥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색다른 시도를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내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던 재료들이 의외의 맛을 내지 않을까. 엄마도 40년 간 찾지 못한 맛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딸의 밥상에 새로운 '엄마'의 레시피가 들어가지 않을까.



 엄마의 밥상에도 가끔은 '새로운 풀이'가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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