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Jul 24. 2021

어느 날, 진미 오징어채가 내게 말했다.

  벌써 한 통을 다 비웠다.

아껴 먹은 건데 순식간에 사라지다니,  아쉬워 죽겠다. 결혼하고부터 남이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지만 엄마의 반찬 중 최애로 꼽는 것이 바로 진미 오징어채다. 달큼하고 짭조름해서 밑반찬으로 제격이라 고슬고슬한 흰 밥에 얹어 먹으면 진짜 꿀맛인 반찬. 제아무리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라 사람들이 말해도 내게 있어 최고의 밥도둑은 바로 이 녀석이다. 엄마표 검붉은 진미 오징어채.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건어물 가게에 들른 엄마는 꼭 진미 오징어채를 한 봉지 가득 사 오곤 했다. 집에 도착 해 한 숨 돌린 엄마는 신문지를 두어 장 펼친 후 그 위에 진미 오징어채를 쏟아부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다듬는 중인 엄마 옆에 얼쩡 거리면 엄마는 가끔 내게 몇 가닥 집어 주시곤 했는데 양념을 하지 않은 본연의 맛도 짭짤하니 좋아 꽤 많이 주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 만들어 먹어 보고 싶었다. 까짓 거 어깨너머로 배운 가닥으로 만들면 그 맛 못 내겠냔 생각에 마트에 갔다. 대략 10,000원에서 15,000원을 웃도는 가격을 보고 몇 번을 망설이다 한 봉지 담아 왔다. 비싼 만큼 절대로 실패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


  요리 앱에서 레시피를 훑어보니 모든 레시피에 '마요네즈'가 들어갔다. 이상했다. 우리 엄마는 마요네즈를 먹는 사람이 아닌데? 여기에 마요네즈를 넣었다고? 또, 색깔도 너무 달랐다. 우리 엄마 것은 약간 붉으면서 갈색빛이 도는데 요리 앱의 것은 지나치게 빨갛고 진득거려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 엄마, 오징어채에 마요네즈 넣어?

= 아니. 내가 마요네즈 먹는 사람이니?

- 그럼 만드는 방법 좀 보내줘.


  수 분이 지나자 '지잉' 진동이 왔다. 분명 엄마의 비법이 담겨 있을 거야, 라며 카톡 창을 열었다. 그런데...


= 식용유, 간장, 고춧가루, 물엿.

= 물엿은 넣고 꼭 불 꺼라. 안 그러면 딱딱해진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요리책이나, 요리 앱의 레시피들처럼 어떤 재료가 얼마큼 들어가야 하는지 계량화 된, 거기에 엄마의 비법도 들어간 (예를 들어 카레가루를 한 꼬집 넣는다든가, 사실은 울릉도산 오징어채만 쓴다든가, 오징어를 하루 숙성시킨다든가 하는) 레피시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고 그저 당신이 생각하기에 꼭 필요한 재료만을 적어 보낸 것이다. 또,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실수를 한 번 더 덧붙여 주면서.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 엄마. 이런 거 말고. 간장은 얼마큼 넣어? 고춧가루는? 몇 숟갈 넣는지 좀 알려줘야지. 이게 뭐야.


  그러자 전화가 온다. 성격 급한 엄마가 문자 대신 대화를 선택한 것. 여보세요, 받자마자 엄마는 내게 이것저것 쏟아내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중불에 식용유를 부어. 아니 그전에 오징어채를 먹기 좋게 다듬고, 찬 물에 한 번 휘휘 저어야 부드러워지니까 그건 꼭 하고. 그다음에 간장이랑, 고춧가루를....


  열심히 설명하는 엄마의 말을 자르고 반문했다.


- 요리책처럼 간장은 몇 스푼, 고춧가루는 몇 스푼 넣는지 알려달라니까?

= 얘, 그걸 언제 계량하고 앉았니. 그냥 눈대중으로 보면서 적당히 하는 거지.

-.......


  눈대중, 적당히, 대충, 감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를 내게 던져 준 엄마는 휴대폰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평생 5지 선다 문제를 잘 풀어 이 자리까지 오게 된 내게 가장 어려운 서술형 문제가 도착한 것이다. 나에게 절대 없는 네 가지를 활용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내 앞엔 한 봉지에 치킨 값을 넘보는 오징어채가 수줍게 누워있다. 도저히 엄마의 레시피로 할 자신은 없어 다시 요리 앱을 켜고 가장 쉬워 보이는 레시피를 선택해 도전했다. 고추장과 간장, 그리고 다진 마늘을 넣어 약불에 끓이다가 나중에 마요네즈에 버무린 오징어채를 넣고 잘 버무리면 완성. 한 김 식힌 후에 먹어보았다.


  맛이 없진 않지만 맛이 없었다. 어떤 날은 너무 진득해 먹을 수 없었고, 어떤 날은 너무 달거나, 덜 달았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날은 약간 비릿한 맛이 나기도 했다. 이상했다. 내가 실력이 부족해 그런가 싶어 동네 반찬 가게를 발견할 때마다 진미 오징어채를 사다 먹어 보았지만, 내게는 별로 였다.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가뜩이나 요리 못하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실패는, 더 이상 '요리'를 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집 밥상에서 진미 오징어채는 사라지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엄마가 진미 오징어채를 한 가득해다 준 것이다. 6월 초에 받은 반찬을 7월 말까지 먹었으니 얼마나 양이 많았는지도 짐작 가려니와, 그걸 내가 얼마나 아껴 먹었는지도 알 수 있다. 반찬통에 조금 남아 있던 것들을 박박 긁어 접시에 내놓고 한 참을 바라보았다. 그 옆엔 냉장고 한편에 잠자고 있던 오징어채를 가지고 다시 한번 도전 한, 나의 진미 오징어채가 있다. 둘을 한참 바라보았다. 색깔도, 맛도, 모양도 다른. 두 진미 오징어채를 말없이 한 참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엄마의 것과 내 것.

  내 것과 엄마의 것.

 

  엄마의 것은 왜 검붉은 색이 날까. 내 것은 좀 더 강한 붉은색이 날까. 엄마의 것은 왜 달큼할까. 내 것은 왜 달큼하지 않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자 어느새 나는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간장, 고춧가루, 식용유, 그리고 물엿이 오징어채와 만나기 전의 시간으로.


  이십 대의 엄마가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다. 앞에는 시장에서 비싸게 주고 산 오징어채가 한가득 있다. 가족들이 좋아해 다시 만들어 보기로 한다. 친정 엄마한테 배웠으면 좋으련만, 바쁜 친정 엄마는 쌀 한 가마니와 김치를 가져다주었지만,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진 못했다. 곱고 고운 손으로 오징어채를 다듬는다. 이제 갓 돌이 된 둘째와, 6살 즈음되어 제법 어른스러워진 첫째가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다. 먹기 좋게 다듬어진 오징어채를 찬물에 휙휙 헹구고 우묵한 팬에 기름을 두른다. 그리고 간장과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어 끓인다. 지난번엔 설탕을 너무 안 넣어 맛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엔 조금만 더 넣어봐야지. 살짝 맛을 보니 알맞다. 적당하다. 약불로 줄여 오징어채를 넣고 골고루 저어 준다. 행여나 한 곳에만 양념이 묻으면 너무 짜거나 다니까, 조심조심, 골고루.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엿을 넣고 불을 끈다. 불을 끄는 타이밍은 감으로 익혔다. 이때 끄지 않으면 딱딱해지니까. 하나 집어 먹어보니 맛이 좋다. 깨소금을 솔솔 뿌려 반찬통에 담아 둔다. 종이에 적어 놓으면 좋으련만, 둘째가 운다. 얼른 달래 줘야지.


  시간 여행의 끝에 만난 엄마의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였다. 어리고 고왔던 엄마가 지금의 엄마가 되기까지의 세월. 그 세월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것이 엄마의 진미 오징어채였다. 손으로 기록하지 못했던, 하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는 레시피. 몸의 레시피.


  그러자 진미 오징어채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네 엄마의 수십 년 세월이 들어가 있단 말이지.
눈대중으로, 적당히, 알맞은 맛을 '감'으로 맞춰 내기까지 엄마가 숱하게 고생한 세월 말이야. 네가 보지 못한 엄마 손등의 흉터들, 사라진 지문들, 그리고 갈라진 손바닥들이 쌓여 만들어진 맛이라고.
그러니까 너도 고민해봐. 너도 노력해봐. 네 세월을, 노력을 담아봐.
엄마의 세월을 꽁으로 얻으려고 하지 말고.
수십 번 해보면서 네 레시피를 찾아봐. 요행을 바라지 말고.




  녀석의 말이 맞다. 나는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고 한다. 적어도 자신 없는 요리에 관해서는 한 발 뒤로 빠져있다. 가장 간단한 레시피를 찾아 효율적인 맛을 내려고 한다. 실패하면 곱씹고 생각해 고치지 않고 레시피나 재료 탓만 한다. 그러니 발전이 없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나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녀석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쉽게 얻으려고 하지 말자. 요행을 바라지 말자. 공으로 얻으려고 하지 말자. 오랜 세월 동안 단단해진 엄마처럼, 나도 그렇게 해보자고 다짐한다.

 

  '도대체 엄마는 레시피도 안 적어 놓고 뭐 했냐'라고 타박했던 지난날의 나를 후회한다. 대신 엄마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몸의 레시피를 존중하기로 한다. 더불어 나보다 더 나은, 어른스러운 '진미 오징어채'를 더욱 사랑하기로 한다. 또 앞으로는 엄마의 맛을 그려보기로 한다. 훗날의 나와 엄마와 내 딸아이를 위해서, 엄마의 레시피를 기록해보기로 한다. 그래서 마음의 도시락을 엄마의 반찬으로 채우기로 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리얼은 죄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