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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04. 2021

김치를 안 먹어도 한국인 맞는데요.

  나는 돌연변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은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나만 다르게 생겨 항상 밖에 나가면 너는 누구 닮았느냐고 물어볼 때.

  엄마, 아빠, 언니는 모두 입맛이 같아 엄마가 차려준 반찬을 (짠지라든가 오이지라든가)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데 나는 입에 넣는 순간 몸이 배배 꼬일 때.

  특히 '김치'를 먹는 순간 입안에 침이 고이며 불쾌한 기분이 느껴질 때.




  그렇다. 나는 김치를 죽도록 싫어했다. 엄마의 반찬은 언제나 맛있었지만, 엄마의 김치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사시사철 계절에 맞는 김치를 해서 밥상에 올렸지만 나는 종류별로 올라온 김치를 먹으며 힘들어했다. 나박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배추김치, 얼갈이, 겉절이 등 다양한 김치는 엄마의 손맛을 거쳐 가족들이 좋아하는 맛으로 익어갔지만 나에겐 정말 견디기 어려운 냄새와 맛으로 익어가는 것뿐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김치를 먹어야지."


  어릴 적, 밥상 앞에서 깨작대는 날 보면 아빠는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저렇게 말했다. 그럼 가뜩이나 소심한 나는 더 위축되었다. 혼이 날까 싶어 배추김치 중 제일 작은 걸 고르고 골라 하나 집어 입안에 넣은 후, 밥과 함께 꿀떡 삼켜 먹어야만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한 번만이라도 김치를 먹으면, 아빠에게 덜 혼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밥상에 올라온 수많은 반찬 중 내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는 것 때문에 수없이 꾸중 들었던 기억은, 김치를 더 싫어하게 했다. 그놈의 김치. 김치. 김치.


  설상가상으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김치를 좋아했다.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도 같이 밥을 먹을 때면 김치를 곧잘 먹곤 했다. 단 한 명도 "으~~ 김치 맛 진짜 없지 않냐?"라고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다들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진지하게 '난 한국인이 아닌가?', '나는 진짜 별종인가?'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친구의 어머니는 꼭 밥상에 김치를 올려주셨는데 가뜩이나 엄마의 김치 맛도 싫어하는 내가 다른 집의 김치 맛을 보며 "와~~ 진짜 맛있어요"라고 웃으며 말해야 하는 상황은 정말 곤욕스러웠다. 하지만 어른들이 김치나 나물을 뚝딱뚝딱 잘 먹는 모습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예쁨 받고 싶어서, 당신 딸의 친구가 꽤 괜찮고 싹싹한 아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어서 눈 꼭 감고 김치를 먹으며 "맛있다"라고 애써 웃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김치를 정말 아예 안 먹느냐, 살면서 김치를 한 번도 안 먹었느냐, 그건 아니다.

  까탈스러움이 하늘을 찌르는 나는, 김치도 아주 유별나게 고르고 골라 먹는데, 어떠한 김치는 만든 지 1~2일 정도 지나서 살짝 설익은 상태를 정말 좋아한다. 완전히 익은 건 아예 손도 대지 않지만, 익기 직전의 상태, 그러니까 10점 만점에 10점까지 익은 김치 말고, 대략 3~4점 정도 익은 김치를 좋아한다. 그런 김치는 정말 말 그대로 '환장'하고 먹는다. 그런데 어느 식당에 가도, 어느 집에 가도 내가 원하는 상태로 익은 김치를 찾아볼 수 없기에 (대부분 10을 넘기거나 10점까지 익은 김치들 뿐) 밖에서는 가능하면 김치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살아온 난 지금까지도 사람들 앞에서 김치를 '억지로' 먹는 노력을 한다. "쉰 김치 냄새 진짜 별로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을 대표하는 '김치'를 싫다고 하면, 어떻게 볼지, 어떤 공격을 할지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밖에서는 김치를 잘 먹는 수더분한 사람처럼 애써 포장한다. 그렇게 노력해야 다른 사람들의 중간 정도로는 맞출 수 있으니 외식하는 일은, 더군다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식사는 정말 최고난도 미션이 된다.


  사실 처음부터 연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각별하게 느낀 사람들에겐 내 속내를 털어놓은 적도 있다.

  그러면 상대는 "그렇구나, 나도 사실은 000 못 먹어!"라는 말 대신 "맛있는데~ 그럼 넌 뭘 먹어?"라고 되물었다. 혹은 "이건 좀 맛있는데, 이거 먹어 봐."라든가, "우리 집 김치는 진짜 밋있는데"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곤 정말 순수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데 눈치 빠른 나는, 그 시선의 의미를 꽤 빠르게 알아챘다. '이상하다. 너 되게 이상한 애다'라는. 그런 시선이 쌓이고 쌓인 게 30년이다. '혹시나'하는 기대는 '역시나'가 되어 마음의 문을 굳게 닫게 했다. 솔직한 것보다는 감추는 게 편하다는 진리는 꽤 많은 상처를 겪고 얻어냈다.


  만약 김치가 아니라 다른 음식이 싫다고 했다면? 불고기나, 갈비찜이나, 잡채나, 전이나, 그런 것들을 싫어해도 이런 반응이었을까? 상상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가끔은 "김치를 안 먹는 외국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은 거야?"라든가, "김치에 들어 있는 유산균은 그릭 요거트에도 있지 않아?"라고 쏘아붙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다 부질없는 것 같다. 어쨌거나 하필이면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을 싫어해서 평생 진짜 '나'를 감추면서 살고 있다는 것은 변함없으니까.


  그런데도 약간은 억울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맞춰왔던 삶을 멈추고 싶어지기도 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소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때로는 '무례'할 수 있음 정도는 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사실,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에게 힘을 주고 싶어진다. "괜찮아요. 저도 그래요!"라고 공감해주고 싶어서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김치를 안 먹는 사람도 있다.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의 수만큼, 나처럼 다 커서도 김치를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입맛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치를 안 먹는 사람에게 "어떻게 '김치'를 안 좋아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 말자. 김치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음식으로 대체되어도 '취향'을 존중받아야 한다.


  한국인의 밥상이기 때문에 '김치'를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말자. 때가 되어 그 맛이 좋으면 절로 찾아 먹는 게 입맛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내 앞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의 젓가락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하지 말자. 그 사람은 그 젓가락질을 당신 앞에서 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 수 있으므로.


  김치를 안 먹어도 한국인 맞다. 내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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