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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06. 2021

분홍 소시지를 찾아서

  흔히 말하는 '초딩 입맛'이다. 건강한 맛보다는 자극적인 맛을 더 좋아한다. 어릴 때엔 더 심해서 밥상에  소시지나 햄이 꼭 있어야 밥을 먹었다.


  급식이 없던 시절, 도시락 반찬 뚜껑을 열었을 때 엄마가 툭툭 썰어 계란물에 부쳐준 소시지를 발견하면, 친구들과 나눠 먹기 싫어 다시 뚜껑을 덮고 싶었을 정도니까.


  저녁 산책을 하러 나갔는데 갑자기 그 소시지가 먹고 싶었다. 흰 밥에 소시지 하나 얹어서 꿀꺽 삼키고 싶었다. 계란도 있겠다, 분홍 소시지만 찾으면 됐다. 마침 눈에 보인 마트로 들어갔다.

  

   원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기억 속 초록 포장지의, 롯데햄 야채 소시지 대신 족히 50cm는 되어 보이는 길이의 기다란 분홍 소시지를 고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어쩐지 계란 한 개는 부족하다. 아깝지만 계란 두 개를 톡톡 깨 넣고 휘휘 저어 계란물을 만든다. 적당한 두께로 썰어놓은 소시지에 계란물을 입혀 프라이팬에 내려놓으면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익어간다. 두 어번 앞 뒤로 뒤집으면 노릇노릇 익어가며 냄새도 좋다.


  “난 그 소시지 싫어해.”라며 단호하게 거절하던 남편도 방에서 슬그머니 나오며 입맛을 다시는, 부정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추억의 맛. 추억의 향이다.


  밥상의 한편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소시지를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이미 좋아하는 반찬으로 가득 차린 밥상이지만서도 소시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어릴적으로 돌아간 것 같은, 방문을 열고 엄마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그런데 요새 과거의 맛이 사라지는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재료도 좋고, 모양도 예쁘고, 포장도 화려해지고 있지만 어쩐지 어릴 적 도시락 뚜껑을 열 때 친구들에게 환영받았던 그 ‘분홍 소시지’만의 감성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


  육아하다 지친 날이나, 회사일로 힘든 날엔 가끔 어린 시절의 맛이 그리워,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흉내 내고 싶은데 동네 마트에선 보기 힘들고, 대형 마트에서는 자꾸 돈육 함량이 놓고 좋은 재료를 가득 넣었다며 다른 제품들만 홍보한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스펙이 볼품없는 나의 분홍 소시지는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당연히 요새 나온 것들이 기존의 것보다야 좋겠지만, 그리고 그걸 먹는 게 건강에도 조금 더 낫겠지만, 그래도 뭔가 아쉽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바뀌었다. 동네 슈퍼, 문방구는 이미 대형 마트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지 오래. 그러다 보니 추억의 맛으로 불렸던 과거의 식품들도 영양학적으로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마트에서 굳이 ‘분홍 소시지’를 찾는 것은 건강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굳이 추억의 장난감 박물관에 가는 것은 그 놀잇감이 최신식이어서가 아닌 것처럼. 내가 사는 건 ‘분홍 소시지’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이니까.

  

  때문에 사라져 가는 것들을 지켜내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어느 지역엘 가도 같은 프랜차이즈 가게만 있는 균일한 모습이라면 그것도 어쩐지 슬프다. 그 가게에서 산 물건들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같다면, 어쩐지 이상할 것 같다.


  그러니까 요새 나오는 좋은 소시지의 자리 한편에  ‘분홍 소시지’ 영역만큼은 조금 더 내어줘도 되지 않을까? 1mm의 작은 틈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그 작은 틈으로 누군가는 행복할 수 있고, 누군가는 추억에 젖을 수 있고,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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