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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an 31. 2022

우연히 만나 마음에 쏙 들기가 어디 쉬운가요?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를 읽는 중입니다.

아이가 자고 있는 시간은 아주 귀하다. 언제 깰지 몰라 긴장되지만 조용한 덕분에 뭐라도 할 수 있기 때문. 요 며칠 7시 30분에 일어나는 녀석은 오후 2시쯤 되면 눈을 꿈뻑인다. 졸려 죽겠지만 자지 않겠다 투정 부리는 녀석을 눕히니 5분 만에 잠든다.


같이 정신을 잃고 잠들던 나는 단숨에 일어나(지는 못하지만 대게 15분 안에 일어나서) 못한 빨래, 설거지, 그리고 정리 따위를 한다. 어떤 날엔 녀석이 두 시간을 넘게 잘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책을 읽곤 한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며칠 전 알라딘 중고서점엘 간 적이 있다. 연애할 때 곧잘 갔던 곳이라 어느 지점이든 늘 반가움이 앞서는 그곳에서 아주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워낙 에세이를 좋아해 신간 코너를 뒤적이고 있었는데 서가의 제일 아래에서 언젠가 한 번 들어본 작가의 이름 석자를 본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꺼내 보니 책 제목과 표지도 썩 마음에 든다. 몇 장을 넘겨 읽어보니 단박에 알겠다. 이 작가의 문체가 완전 내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익숙했던 작가 이름은 바로,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거리는 브런치의 9회 브런치 북 대상 수상자 명단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이유 없이 사고 싶은 책이었다. 설사 처음 몇 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전부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한 번은 차분히 읽어보고 싶었다. 직장 생활이 힘들던 시절 그토록 가고 싶던 제주를 싫어하는 제주 토박이의 마음이 궁금하기도 했고.


하지만 엄마의 삶이란 자유의지보단 타의에 의한 것이 많기에 사고도 며칠은 열어볼 수가 없기 마련이다. 역시 그랬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그런 책을 샀는지도 까먹게 된다. 괜한 욕심에 두어 권 더 사놓은 책 위에 얹어 놓고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문득, 그 책이 떠올랐다. 아이는 TV를 보고 나는 약간의 짬이 생긴 오후 두 시 언저리에 불현듯 그 책을 읽고 싶어졌다. TV에서 달님이 뮤지컬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 와중에 나는 홀리듯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날, 그곳에서 책을 사기로 한 내 선택은 아주 옳은 것이었음을.


작가의 삶이 여과 없이 드러난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깊이 와 박혔다. 눈으로 읽으면서도 그랬구나, 그렇구나, 그런 것이구나, 하며 마음으로 곧장 내리 꽂히는 글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작가가 한없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마냥 행복한 내용만, 마냥 우울한 내용만 있지 않은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가 도리어 마음을 울린다. 더불어 내가 쓰는 에세이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그 안에 얼마나 진심을 담았는가.


아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도  마음에  기란 쉽지 않다. 관계에 민감했던 내가 친하게 지낸 사람들을 돌이켜 보면 절반 이상을 그들에게 맞춰서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같다.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은 추리고 추려도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하물며 책에서 그런 공감을 얻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글로만 소통하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서 글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다고 본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판타지를 내게 현실로 가져다준 책 중 하나다. 겨우 250쪽 중 40쪽 읽어 놓고선 이렇게 글로 쓰는 이유는, 써야만 하는 이유는, 이 마음이, 이 기분이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오후에는 틈틈이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읽으면서 글쓴이의 생각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의 답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참, 생각해보니 이 책을 아껴 읽지 않아도 되겠다. 브런치 북이 조만간 새로운 책으로 탄생해 서점에 나타날 테니 그때도 사서 읽으면 되겠다. 그러면 내 마음은 1년 내내 따뜻해지겠구나.  

 

그것 참, 잘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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