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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10. 2022

우리의 하루는 너무나 소중해

과거를 불행한 마음으로 추억하지 않도록


모니터 옆에 뽀로로와 크롱이 자리 잡은 지 1년이 지났다.


2021년 초,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우리 딸도 잊고 일에만 빠져 지낼 것 같아 가져다 놓은 것이다. 오늘 책상 정리를 하고 있는데 엎어져 있는 뽀로로를 일으켜 세워 놓고 보니 새삼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음을 느낀다. 어린이집 입학을 앞두고 긴장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이제는 '교육부' 관할의 '유치원'을 가는 아동이 되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 피규어를 살 때 딸은 뽀로로랑 크롱을 무척 좋아했다. 당시엔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서 요요요, 아카,라고 부르던 녀석인데 이제는 뽀로로 대신 코코몽을, 크롱 대신 베이비 존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자라 버렸다.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녀석이 이젠 혼자서 옷도 입고 양말도 신을 수 있을 만큼 커버렸다. 어릴 때는 얼른 커서 제 할 일은 스스로 했으면 했는데 조금씩 내 손길이 없어도 되니 웃기게도 약간은 아쉽다.

 

아이를 키우는 하루는 길지만 1년은 짧게 느껴진다. 온전히 홀로 아이를 볼 때의 하루는 10년 같지만, 그 하루들이 흐르고 흘러 지나가 버리면 어느새 1년, 2년은 금방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올봄에 입혔던 내복의 소매가 겅중하고 올라가 있고, 발목이 훤히 드러나 있다. 내 마음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날은 작아진 아이의 내복을 개키며 혼자 감상에 젖기도 한다. 5년, 5살.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이 되어 이렇게 성장했구나.


요새 부쩍   듣고 꾀부리는 녀석에게 자주 잔소리를 했다. 엄마가 싫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무조건 간식만 달라고 떼를 쓰는 통에 어느 순간 나도 짜증을 내기 시작한  오래다. 화를 내면 분해서  소리를 지르는 녀석을 뒤에 두고 그대로 방에 들어간 적도 여러 번이다. 무관심, 외면 그리고 적절한 훈육을 번갈하다가 감당이  되는 날은 귀를 막아 버렸다. 울든 말든,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그러면서도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 홀로 눈을  ,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보면 어제 했던 잔소리들을 주워 담고 싶은 적도 많다. 머리칼 쓰다듬어 주며 미안하다고 속삭인 적도   없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짜증과 후회에 지친 요즘, 불현듯 발견한 뽀로로와 크롱을 보니 날이 섰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그 시절엔 아이가 나를 부르기만 해도 감격스러웠다. 요요요라고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해주었다. 요리할 줄도 모르면서 갖가지 메뉴를 해주어도 힘든 줄을 몰랐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뽀로로를 연속으로 보아도 지겨운 줄을 몰랐다. 그땐 우리 둘 다 서로 너무 필요했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고 나는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어느 정도는 관망해도 된다. 절대적이었던 것들이 점점 옅어지면서 아이와 나는 서로 '꼭' 필요한 존재에서 '곁에 있기만 해도'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훨씬 수월하지만 어쩐지 그때가 조금 그리워지기도 한다.


흘러간 시간을 돌이켜 후회해 봤자 뭐하랴. 더 잘해줄 걸, 사랑해줄 걸 하며 생각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걸. 대신 바꾸어 생각하기로 한다. 불과 2년 전이 지금 이 순간 너무 그립게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도 2년 후에는 너무 그리울 것이다. 아직은 내 말을 잘 따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펑펑 울기도 웃기도 하는 녀석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의 상황에 너무 분노하지 않고, 또 괜한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좀 더 넓게 보고 크게 포용할 수 있도록 마음밭을 좀 더 가꾸어야겠다.


후회와 아쉬움으로만 과거를 추억하기엔 지금 우리의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행복하게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심호흡 한 번 하며 생각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마음으로  사랑하기로.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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