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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06. 2022

발가락 조물조물, 발 마사지

누구보다 고생한 너를 위한 선물

5일 동안 시중을 들다 보니 오늘은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 바다같이 너른 마음을 지닌 엄마였다면 힘들어도 늘 웃으며 받아줄 텐데 나는 그러질 못해, 결국 짜증을 내고 말았다. 어지러움을 견디고 청소를 간신히 마친 후 잠시라도 쉬고 싶어 티브이 틀어 주고 부엌 싱크대 아래서 책을 읽어버렸다. 아이가 잠들기 전엔 절대 하지 않았었는데. 스트레스가 좀 많이 쌓인 듯하다.


졸려서인지 컨디션이 여전히 별로여서 인지 계속 생떼를 부린다. 엄마 미워, 엄마는 저리 가 있어, 엄마 때문에 티브이가 안 보이잖아, 라며 갖은 투정을 부리는데 슬슬 부아가 치민다. 아픈 애 데리고 뭐 하나 싶어 한 번 더 참으려다가 결국 엄마는 방에 가 있을 테니 너 알아서 해,라고 말해버리곤 안방으로 들어왔다. 진즉에 봐 둔 이부자리 곁에 앉아 있는데 밖이 조용하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울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어쨌거나 자신은 지금 아파서 엄마가 그냥 이유 없이 다 받아 줬으면 좋겠단다. 짜증을 부려도 억지를 부려도 그냥 엄마가 다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들으니, 그래, 다 낫지도 않은 애를 데리고 뭘 한 거냐, 싶다. 어린 시절 많이 아파 골골거렸던 나도 늘 엄마 곁에 착 붙어서 응석을 부리지 않았나. 고작 다섯 살 아이가 이 상황에서 의젓하긴 힘든 게 당연하다. 아프니 짜증이 솟구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한데 그런 아이에게 결국 폭발해서 누구보다 냉랭하게 대해버리는 엄마(사실은 나)는 당연하지는 않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너도 고생했지. 사실 네가 제일 아팠지. 따끔거리는 목구멍도 꽉 막힌 콧구멍도, 그리고 유난히 떨어진 식욕도 모두 힘들었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은데 여전한 몸 상태에 속상했지. 나름 뛰어난 공감력으로 녀석의 마음을 살피고 아이가 좋아하는 마사지를 시작한다. 어서 오세요, 발 마사지 가게입니다! 발 마사지해드릴게요, 하면서. 14개월 즈음에 많이 해줬던 마사지다. 목욕 후 베이비 로션을 바른 손으로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었던 기억이 나, 그대로 해본다.


고물고물 잠이 쏟아지는 녀석은 발가락을 꾹꾹 눌러주자 너무나 좋다고, 시원하다고 한다. 맞다. 옛날에도 꼭 그랬다. 말은 못 하지만 내가 엄지발가락, 검지 발가락, 그리고 마지막 새끼발가락을 꾹꾹 눌러주면 까르르 웃었다. 발바닥, 복숭아뼈, 그리고 발목을 차례차례 풀어주면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올랑 말랑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숙면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볼까 싶어 무릎을 주물러 주니 간지럽다며 발가락만 주물러 달라 한다.. 까짓 거 어려운 일은 아니나, 나름 마사지사의 대우를 받고 싶어 500원만 달라고 하니 손바닥을 툭 치며 주는 시늉을 한다. 조물조물, 조물조물 발가락 구석구석을 마사지해준다. 발가락은 사실 네 무게를 지탱하고 걷느라 가장 고생하는 친구야, 그러니까 항상 이렇게 주물러 줘야 해, 하며 한창을 주무르는데 녀석의 눈이 스스륵 감긴다. 보통 그러다 깨기도 해서 한참 눈치를 본며 주무르는데 잠든 게 맞다.


오. 5분도 되지 않아 잠들다니. 마사지의 힘인가, 고단함의 힘인가. 전자와 후자 모두의 힘인가? 아직 500원어치까지는 하지도 못했는데 잠들어 버리니 아쉬워서 몇 번을 더 꾸준히 주물러 주니 아예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자고 있는 녀석을 보니 순간적으로 화냈던 부정적인 마음들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찰나를 참지 못해 엄하게 말하고 미워하고 외면했나. 아이의 나이만큼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이보다 어린 엄마가 되고 있진 않은가.


아이 옆에 누울까 하다 멈추었다. 분명 이대로 잠들면 오늘의 일은 날아가 버릴 터. 잠시라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누군가 나의 발가락도 조물조물해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럴 이가 없으니 아이 자는 유일한 작업시간 동안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여전히 아이 키우기가 어려운 다섯 살짜리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렁그렁 맺힐 마음의 눈물도 닦아주기로 한다.



사진 : Howard Bouchever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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