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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22. 2022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아주 기분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정말 마지막이었다. 어제가 마지막 출근일.

마지막. 마지막이란 단어가 붙으면 어쩐지 감성적으로 변하는 터라 출근 전부터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힘들 때에는 이놈의 직장 언제고 떠날 마음으로 다닐 거라고 떠들어 댔지만 어쨌거나 오랜 시간 정들었던 곳을 떠나는 마음은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걸을 새삼 깨닫는다.


인수인계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정해진 시간은 1시였지만 부러 일찍 출근했다. 워낙 먼 거리기에 부지런을 떨었다. 아직 다 녹지도 않은 몸과 깨지도 않은 머리를 이고 6시 40분에 통근 버스에 올랐다. 동트지 않은 광장엔 어둠이 가득했다. 습기 가득 찬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오늘은 꼭 새로 온 후임자에게 내가 해왔던 일을 꼼꼼히 설명해주리라. 마무리를 잘하고 오리라.


도착해 짐을 푸는데 동료에게 카톡이 하나 왔다. 언제 오느냐는 말에 지금 도착했다 하니 꼭, 자기를 보고 가야 한단다. 마침 뒷자리에 앉는 동료기에 어려움 없이 만나겠거니 싶었는데 이 사람,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하나 내민다. 책을 샀어요, 구 작가 아세요? 정말 제목이 와닿아서 산 책이에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저 밑에서부터 고마움과 감동이 밀려온다. 이런 걸 제가 받아도 되나요, 저는 준비를 하나도 못 했는데. 빈 손이 이토록 미안한 적은 없었다. 뭐라도 준비할 것을, 당장 카카오톡 선물하기라도 할까 싶어 망설이는 사이 이미 사라지고 없다. 마음 같아서는 술 한 잔 기울이며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코로나가 이토록 원망스러웠던 순간이 없다.


일을 매듭짓고 집으로 돌아와 정성스레 포장된 포장지를 뜯어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제목이 와닿아서 산 책이에요!"라는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겠다. 이 사람, 나의 행복과 나의 안녕과, 나의 평안을 누구보다도 잘 바라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거기에 깨알같이 그려 놓은 내 그림과 그 밑에 (차마 공개하긴 부끄러운) 우리만의 암호 같은 글귀를 적은 카드 한 장에 그만 눈물이 핑 돈다. 나, 그래도 잘 지내왔구나, 이렇게 사랑받아 왔구나 하는 생각에 그만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어쩜 마음을 잘 알아주었을까. 새 곳에 가서 불안하고 걱정할 나를 알아준 마음이 고맙다. 그리고 1년 간 서로의 뒷모습만 보며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조금만 더 관심을 보이며 잘할 것을. 조금만 더 시간을 나눌 것을. 언제나 지나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하는 스스로가 많이 미워진다.


공간이 멀어지면 만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거주지도, 직장도 너무나 멀어진 데다 코로나가 강력하게 버티고 있는 지금, 아마 평소보다도 훨씬 만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 한 권으로 그 이와 같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제나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당신이 편안한 것을 선택하세요"라고 말해주었던 그 이, 너무 바빠 눈코 뜰 새 없이 일만 했던 내게 소소하지만 큰 행복을 나누어 주었던 그 이와 함께 하는 것만 같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있는 보잘것없는 글솜씨로 오늘을, 그리고 그 사람을 이렇게 남겨 두는 것뿐. 그리고 미처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곳에 넣어 두는 것뿐.


실없는 농담 가득한 카톡도 우리 함께 뒷 통수만 보며 나누었던 이야기도, 5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함께 했던 그 17년도의 기억도 모두 잘 안고 간다고, 함께하는 동안 너무나 평안했다고. 그 기억 안고 앞으로 잘 지내보겠다고.


분명,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테니까.



추신 :

혹시나 이 글을 볼 수 있을 그 이에게 한 마디 더!

'이거 내 이야기 인가?' 싶다면,  맞습니다. 당신 맞아요.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연락 자주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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