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이 이렇게도 간사하군요.
직장을 옮기게 됐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다. 얼마나 좋았으면 소식을 듣고 눈물까지 핑 돌았으니.
4년 만에 장거리 출퇴근을 벗어나는 게 강한 열망이었기에 무조건 바라던 일이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버려지는 시간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제발, 제발, 제발, 떠나게 해 주세요! 제발 저도 집에서 편도 3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이동하게 해 주세요. 하고!
전 직장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거리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좋았다. 배려해주는 사람들, 이해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게 다녔다.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모두 그곳에서 해냈던 터라 더 정이 많이 들었었다. 멀긴 했지만 환경이 좋았다. 직장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단점이기도 했지만 장점이기도 했다. 자연이 맞닿은 곳에서의 근무는 정서적인 위안을 많이 주었다.
익숙함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4년을 같은 곳에서 일하다 보면 사람도, 일도 손에 익는다. 워낙 적응력이 느린 사람이라 한 곳에 정을 붙이는데 오래 걸리긴 하지만 한 번 정을 붙이면 꽤 오래도록 좋아한다.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다. 심지어 작년 말에 이미 올해 어떻게 일을 할지 구상을 다 해놓았다. 익숙한 사람, 환경, 그리고 조직 문화에 맞게 하고 싶은 것을 한 번 해보리라 마음먹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동하게 됐다. 바람대로 무려 편도 30분 거리의 직장으로 가게 됐는데 어딘가 마음이 허전하다. 매일 우스갯소리로 난 당장이라도 떠날 마음으로 회사에 짐 안 가져다 놓을 거야, 다 버릴 거야, 하며 지냈는데 아니었다보나. 짐은 없어도 마음은 그곳에 많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내리 4일 동안 새로운 곳에 가서 인수인계도 받고 회사 문화 관련 연수를 들으면서 나오는 길,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곳에서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예전처럼 좋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을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옮긴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결정이었을까?
하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평온했던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게다가 지극히 개인적인 데다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INFP(혹은 J)인 내게 지나치게 가족적인, 분위기가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조용하게, 혼자서, 내 할 일만 하면서 그렇게 소소하게 다니고 싶은데 이곳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갑자기 겁이 난다. 처음 만났을 때, 학번과 나이를 공개하는 문화에 흠칫 놀랐달까. 결국 몸보다 마음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었나.
불편한 마음속에 4일간의 연수는 끝이 났고, 나는 이제 이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 완벽한 선택은 없고, 언제든 기회비용은 있게 마련이란 건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지만 나도 사람이라 간사한 마음에 자꾸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그 감정 한편엔 결국 '두려움'과 '불안'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나, 불안하구나. 그래서 자꾸 이렇게 마음이, 그리고 머릿속이 복잡하구나.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제일 싫어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딱 맞다. 어쩔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곱씹지 않는 게 맞다. 평생을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하며 살지 않았나. 그러니 이미 건너버린 강 저편을 돌아보지 말자. 대신, 조금 단단하게 마음먹자. 잘할 필요 없으니 그냥 일단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 변화가 두렵다면 그 두려운 마음을 부정하지 말고 딱 그만큼만 해보자. 그렇게 보내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변화가 두려운 것은 누구나 당연하니까.
사람은 원래 지극히 간사한 존재이니까.
나도, 사람이니까.
photo by Timur Kozmen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