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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23. 2022

엄마가 퀴 내봐!

다섯 살에게 오늘도 배웁니다.  

이건 동그랗고 이~~렇게 큰데 

줄무늬가 있는 거야

이건 뭘까?


음... 참외?


아니야!


음... 아!! 수박!!?


(웃으며) 정답은... 바로!! 수박!!!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퀴!라고 해서 뭔가 했더니 퀴즈였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물을 아는 만큼 설명해서 맞추게 하는 놀이. 깜짝, 놀랐다. 아니, 우리 애가 벌써 이렇게 컸나? 싶어서. 아니, 우리 애가 혹시 '천재'는 아닐까 싶어서! (네. 고슴도치 맞습니다..)


말이 늦게 트인 아이였다. 여자 아이들은 보통 말이 빨리 트인다는데 28개월이 다 되어갈수록 몇 개의 단어 외에는 전혀 말하지 못했다. 답답했고, 불안했다. 그동안 보여준 뽀로로, 핑크퐁이 지나가며 후회가 되고 책을 많이 사주지 못하고, 읽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엄마의 노력만큼 아이가 성장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모든 탓이 내게 있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어린이집에 입소하면서 어휘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문장, 단어, 그리고 인과관계를 고려한 대화가 되면서부터는 한시름 놓았던 것 같다.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 나름의 '생존'을 위해서 어휘력과 표현력이 는다는 선배맘들이 이야기가 맞았던 것이다. 


딱히 불안감 없이 1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는 훌쩍 자랐으며, 가끔 편식도 하고, 낮잠을 자지 않는다 투정을 부리는 등 여느 아이들과 다를 게 없이. 그렇게 아주 평범하게. 어느 순간 우리 아이의 개월 수도 기억나지 않게. 그렇게. 


어제는 나름 '신선한'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5세 (만 3세)의 아이가 나에게 퀴즈를 내다니! 퀴즈!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 정확히 알아야지만 매끄럽게 낼 수 있는 그 '퀴즈' 말이다!! 그것도 주변에 있는 단어를 척척 가져다 쓰는 게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설거지를 다 끝낸 내 옆에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생각해 낸 걸까? 어린이집에서 배운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아이와 '말놀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신이 나버린 나는 아이와 함께 했던 모든 단어들을 잘 풀어 설명하며 퀴즈를 내보았다.   


이건 네가 요새 되게 좋아하는 거야,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가는 건데, 중간에 길이 막혀 있기도 해, 하지만 잘 해결하면 우리가 하이파이브하는 거, 이건 뭐지?

음... 정답은... 미로! 
이건 네가 어린이집 갈 때 메는 거야. 이름표도 달려있고 안에 중요한 물건이나 식판 등을 담아 가져 가. 이건 뭘까?

음... 정답은... 가방!


모두 다 맞힌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맞혔다. 우리는 함께하며 웃고, 낄낄거리고, 끌어안다가 행복해졌다. 정답의 개수는 필요 없었다. 아이가 이만큼 커서 나와 이런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게 벅차올랐다. 5년이 지나니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녀석, 조금씩 천천히 쑥쑥 자라고 있었구나. 새삼 뭉클했다. 




녀석이 잠든 새벽, 문득 궁금해졌다. 

네 머릿속에 '엄마'는 어떤 말로 표현이 되고 있을까? 다정한? 따뜻한? 함께 하는? 바쁜? 언제나 뒷모습만 보이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고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며,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새삼 흐르듯 지나가는 하루의 소중함을 느낀다. 우리가 함께할 하루하루가 쌓여 너에게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고 '가족'이 되겠구나 하니, 지난날을 돌이키게 된다. 


부러 잘하려 애쓸 필요는 없지만 일에 쫓겨 소중한 것을 놓칠 이유도 없다.

녀석의 마음속에 내가 어떻게 담길지는 모두 나에게 달려있다.


오늘도 다섯 살에게 배우는

다섯 살짜리 엄마다.  



Photo by Towfiqu barbhuiy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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