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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02. 2022

곤도 마리에 이모가 필요해

정리정돈을 안 하는 40개월 가르치기

기질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우리 딸도 정리 정돈 안 하는 기질을 물려받은 게 틀림없다. 어려서부터 어수선하게 늘어놓아 혼나기 일쑤였던 내 모습이 지금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물려받으려면 조금 더 좋은 것을 물려받지, 하필이면 지저분하고 (정리하는 면에서는) 둔하고 게으른 것을 받았나 싶다. 그러다 갑자기 어린이집에서는 야무지게 잘할 것 같다는 생각에 울컥한다. 선택적 정리정돈이라. 너무 일찍 사회를 알아버린 딸이 때론 얄밉다.


사실, 나는 정리를 그다지 잘하지 못한다. 물건이 있을 자리를 정해 놓으라고 수천 번 잔소리했던 친정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더니 내가 직접 살림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집안이 뒤죽박죽 난장판이 됐다. 하필이면 남편도 정리 유전자가 없어서 집은 언제나 한 번 몰아서 정리하고 나면 어느 순간 엉망이었던 원래대로 돌아가 있다. 이상하게 행거를 사도, 책장을 사도 언제나 물건은 차고 넘치니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른들 물건이야 큼직한 데다 가끔 고가의 것들이 있으니 각자가 알아서 정리하려고 노력한다지만 아이의 물건은 차원이 다르다. 플레이도우 한 번 놀고 나면 바닥에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며 레고 블록은 자칫하면 한 두 개 꼭 잃어버리고야 만다. 색연필, 크레파스는 물론이고 스티커가 옷에 군데군데 붙어 있는 건 예사. 가끔은 주방 수납장 안에 몰래 넣어놓은 블록을 발견하고 헛웃음 지은 적도 많다. 왜냐, 40개월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 따님께서는 정리의 '정'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직 어리고 손이 여물지 않아 내가 다 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에는 장난감도 큼직 큼직한 편이어서 (가령 에듀 테이블, 소서, 커다란 블록, 봉제 인형 등등) 정리가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그런데 개월 수가 더해질수록 장난감은 작고 정교해졌다. 주방 놀이는 몸체만 크지 그 안에 들어가는 소품은 모두 작고 귀여운 것들이었으며 마론 인형은 꼭 맞지도 않는 왕관을 쓰고 너무 작아 언제고 없어질 준비가 되어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런 장난감들 조차 처음엔 하나씩 종류 별로 나누어 분류해주기도 했으나 그 짓(?)을 2년 넘게 하니 이젠 한계에 도달한 듯싶다.


어제 일만 해도 그렇다. 요새 미로 찾기에 빠져있는 녀석을 위해 인터넷에서 미로 이미지를 검색해 잔뜩 출력해주곤 한다. 한 번 출력할 때 대략 20장 정도를 뽑아 주는데 이 녀석이 글쎄 한 뭉터기를 받아가서 바닥에 흩뿌리면서 미로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갑자기 물감을 꺼내 놀고 싶다고 하더니, 그 물감도 몇 번 하다가 말고 금세 스티커를 꺼내 붙이고 있다. 물론, 정리는 한순간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간 자리에 '놀이'의 흔적을 모조리 남긴 채.


하루 종일 꾹 참다가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이 녀석아, 네가 논 것은 네가 치워야지, 도대체 엄마는 너 장난감 치우려고 있는 사람이야? 오늘 하루 종일 몇 번을 치우는 거야? 너 자꾸 그러면 산타 할아버지한테 너 정리 정돈 안 한다고 다 말할 거야, 그럼 올 해는 선물도 못 받지, 이렇게 정리 안 하면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한테 혼나, 이게 뭐 하는 거야? 따위의 말을 무분별하게 무자비하게 되는대로 쏟아내니 옆에서 뚝뚝뚝, 시뻘게진 얼굴로 울고 있다. 그 순간 나도 정말 화가 났는지 우는 녀석을 보고도 그렇게 안쓰럽지 않다. 오로지 매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스티커만 눈에 띌 뿐.


엄마 죄송해요, 아빠 미안해요, 라며 눈물 한 바가지 쏟아낸 녀석은 내 소매를 꼭 잡고 같이 정리 하자며 매달린다. 휴- '같이' 하자는 건 결국 내가 더 하게 되는 꼴인데 그냥 못 이기는 척 넘긴다. 다음엔 그러지 말라면서 등 토닥이며 불 같은 화를 잠시 가라앉히는데 갑자기 조용하게 속삭인다. 선물, 받고 싶다고. 하하! 이 놈! 결국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무기가 됐구나. 진심 어린 반성을 기대했던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눈물과 버럭으로 얼룩진 정리 시간이 겨우 끝나고 얼추 깨끗해진 거실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생각한다.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라 어떻게 정리 교육을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집 자체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살지 못해 아이에게 보여준 것이 없으니 나무랄 자격도 없는 것 같아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 기관 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제 몫은 해야 할 아이를 위해 어디서부터 본보기 교육을 시켜야 할지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귀찮으면 며칠이고 청소도 빨래도 미루면서 사실 거실 트롤리 속에는 칸칸이 지저분하고 엉망인 잡다한 소품들을 넣어놓고선 '정리'를 안 한다고 잔소리하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다.


몇 년 전 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가 가정에 방문해 집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아이 셋을 키우던 엄마의 집에 넘쳐 나던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힐링이었다.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그리며 생각한다. 우리 집에도 곤도 마리에가 한 번만 와 주었으면, 하고. 그러면 열심히 배워서 나도 다시금 정리 유전자를 심어 우리 딸에게 물려주었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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