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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06. 2022

자가검사키트의 늪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무서워 권고사항일 뿐이라지만 입학식 때 받아온 키트를 꺼내 검사를 준비한다. 매일 같이 '띠링-'하고 도착하는 재난안전문자의 숫자는 이제 무감각해질 정도로 많기에 알아서 스스로 방어하고 대비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혹시나, 만에 하나, 만약에 우리 아이가 걸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떠돌고 떠도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내 맘대로 했다가 그게 현실이 되었을 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당장의 하루가 벅차고 버거운데 아이까지 아픈 것을 더하고 싶지 않다. 겁많은 엄마는 자가진단키트 사용법을 읽고 또 읽는다. 지난 2월 불어나는 확진자 수에 혹시 몰라 한 봉에 6,000원씩 주고 산 키트 5개 중 두 개를, 오늘 써볼 참이다.


깨끗한 손, 그리고 면봉, 키트, 노즐캡 등을 잘 사용해야 한다고 써있는데 제일 중요한 게 빠져있다. 편안한 마음. 그게 없다면 아이를 데리고 검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방법을 익히고 익히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하면 천방지축 다섯 살 딸내미가 무사히 검사를 받을 수 있을지 궁리하고 또 궁리한다.


지난 겨울 PCR 검사를 받던 날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의 초입, 택시를 타고 찾아간 보건소를 보고 처음엔 방방 거리며 좋아하던 녀석이 갑자기 제 콧속 깊숙이 들어가던 면봉에 몸서리를 치며 울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며, 떼쓰며, 발악을 했다. 좋아하는 빵을 한아름 사주어도 쉬 풀리지 않았는데 어쩌면 당연하다. 어른도 아픈데 아이는 오죽하겠으며, 말귀를 다 알아듣지 못하는데다 코로나가 단순히 '모기'인 줄만 아는 녀석에게는 배신이 범벅된 날이었을테니까.


그 때보다도 더 악화된 상황에 안 할 수 없다. 기관에 아이들을 믿고 맡기려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키트를 해서 '음성'을 보는 게 마음 편하다. 육아를 시작한 순간부터 끝까지 모두 부모의 '선택'이라지만 이렇게 매 순간 선택이 힘든 시기는 없었다.


잘 놀고 있는 딸을 불러 본다. 혼자 힘이 부칠 것 같아 일 하고 있는 남편에게도 협조를 미리 구했다. 곁에서 혹시나 힘이 필요할 때 도와 달라고. 재밌는 놀이를 하자고 하니 신나서 달려온 녀석은 금세 '면봉'을 발견하곤 도망친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겠지만 그 겨울의 아픔이 아마 깊은 곳에서 본능적으로 올라왔을 것이다. 예상했던 1차 실패.


두 번째 작전은 '함께'다. 어차피 나도 직장에 나가려면 해야하기에 엄마도 할 거고 아빠도 곧 할 거라는 걸 강조하고 마지막으로 사탕으로 꼬셨다. 워낙 통통한 녀석이라 병원에서 진료 받고 받아온 것 외에는 절대 준 적없는 사탕을 주겠다며 꼬드기니 금세 넘어온다. 먹을 것에 약하다.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겠지만 어쨌든 성공이다.


나도 무섭고 싫다. 하지만 모름지기 엄마라면, 아이가 두 눈 크게 뜨고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한다. 이럴 때 엄마는 극한직업이 된다. 이것 봐, 하나도 안 아파. 이거 봐, 하나 둘, 셋... 열! 하며 콧 속에서 면봉을 돌리는데 사실 아프다. 뭔가 간질간질 기분 나쁘게 거슬린다. 그래도 어쨌거나 성공.


딸 아이에게 웃으며 다가가 콧속에 넣어 양 쪽을 열 번씩 총 20번을 돌리는데 녀석이 몸을 부르르르 한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울고불고 난리났을텐데 역시 사탕이 먹고 싶기는 먹고 싶은가 보다. 어찌 어찌 해서 키트에 용액 세 방울 떨어뜨리고 15분이 지나 결과를 보니 다행히 우리 둘 다 음성이다.


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 제대로 외식한 적도 없고, 직장에서 도시락 싸서 먹는데다 주말에 나가서 놀지도 않으니 사실 당연히 음성일 확률이 높은데도 막상 키트에서 '한 줄'이 나오니 안심이 된다. 사람 마음이 참 웃기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보다 눈으로 확인할 때의 신뢰도가 훨씬 높아진다.


근데 사실 문제는 이 한 번의 음성으로 유치원 등원 프리패스가 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아이들에게 최소 일주일 2회 검사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결과가 양성인 경우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집에서 어린 아이에게 이 검사를 시켜야만 하는 부모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오늘은 다행히 음성이지만 다음 번에 다른 결과가 나오면? 그 후는 상상하기 조차 싫다. 마스크가 일상이 된 아이에게, 혹시나 나가서 간식을 사주더라도 꼭 유모차 안에서 방풍 커버를 씌워 먹는 게 익숙한 아이에게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 그러니까 한 달에 8번을 꾸준히 콧 속에 면봉을 넣는 경험까지 하게 하는 상황이 씁쓸하다.


유치원에 가는 게 너무 재밌어서 등원할 때 콧노래를 부르는 아이다. 15분이나 걸어가야 함에도, 중간에 큰 교차로 하나를 지나가야 함에도 투덜거리지 않는 아이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선생님, 그리고 새로운 놀이가 하나 하나 소중한 아이다. 그런 아이들이 여기 우리집에도 있고 옆 집에도 있고, 곳곳에 수 없이 많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아이들의 잘못은 단연코 아닌 일.

언젠가 끝이 보인다고 하지만 사실 상 끝도 없이 이어져 3년째 접어드는 이 일이 어쩐지 오늘따라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사탕 손에 쥐어 주니 좋다며 뭣도 모르고 신이 나 있는 녀석의 등을 두드리며 생각한다.


언제끔 끝이 날까. 언제끔 너와 나와 아빠가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나가 놀 수 있을까. 그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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