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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11. 2022

어제의 나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기를

그러니까, 이유가 뭐였더라.


며칠 전부터 콧물이 계속 흐르는 게 불안해서 어제 조퇴하고 병원에 데려가야 했고, 유치원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짜증을 냈고, 유모차에 타서 곤히 자다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떠나가라 울었지. 간호사 선생님이 사탕 하나 쥐어주니 금세 신나서 웃다가 다 먹은 순간부터 계속 유모차에서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온 갖가지 장난을 쳤고, 자꾸 나한테는 엄마랑 안 논다고 투덜거렸어.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또 놀겠다고, 유치원에서 받은 과학 놀이 키트 하겠다고 떼쓰기 시작한 거야. 울고 불고, 얼굴이 빨개져서 토할 때까지 울고. 그러다가 기침하고 또 토할 때까지 울고. 콧물이 줄줄 흐르고 그걸 또 빨아먹고. 유치원에서 놀았던 옷도 안 벗겠다, 손도 안 씻겠다, 그냥 이렇게 놀겠다 실랑이하다가 결국 소리 질렀지. 누가? 내가.


글로 표현이 안 돼. 너무 감정에 치우쳐서 막 쏟아붓느라고. 말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자꾸 그게 안 되더라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하니까 그 어린것 앞에서 자꾸 내가 화를 내더라고. 그런 나를 보고 저도 속상하고 무섭고 그러니까 내 옆에서 엉엉 울면서 엄마! 엄마!! 하며 소리 지르고. 그런 우리를 보던 남편은 조용히 방에서 눈치를 보고 있고.


근데 웃긴 건 아이한테 화를 내는 모습이 꼭 우리 엄마를 닮은 거야. 우리 엄마, 예전에 나 혼낼 때면 꼭 이렇게 혼냈거든. 맘 속에 쌓아뒀던 감정 다 한 번에 그냥 콸콸콸. 그러면 난 그걸 들으면서 무척 울적해지고 불안해졌던 것 같아. 나도 그러고 있더라고. 겨우 5살짜리한 테. 이겨서 뭘 하겠다고.


결국 녀석은 방구석에 혼자 앉아 놀고 있고, 나는 주방 한편에 앉아 배달 음식을 주문하다가 짜증 부려 남편까지 기분이 상해버렸지. 아차 싶어 얼른 사과하고 (조금 뒤늦게) 인정하고 배달 온 음식과 맥주를 먹으며 되짚어 보는데 도대체 요새 들어 왜 이렇게 더 신경질이 나고,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어.


사실 유치원 갔다고 엄청 큰 것도 아니잖아. 형님 형님 하지만 아직 엄청 애기잖아. 그리고 나도 뭐 별거 없는 그냥 엄마잖아. 근데도 자꾸 화가 나고 맘대로 안 되는 게 싫어. 자꾸 규칙을 나 스스로 만들어서 아이한테 주입하다가 안되면 그걸 남편에게까지 짜증을 내고 있어. 바보 같이. 요새 들어서 참 그래.


게다가 화를 날 때, 앞에서도 그랬듯이 자꾸 엄마의 얼굴이 돼. 어릴 적 무서워했던 엄마의 감정을 내가 그대로 받아온 것 같아.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속상해. 나는 그런 면은 닮지 않았으면 했는데 고스란히 받아왔나 봐. 엄마의 얼굴. 엄마의 감정.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니 어제의 내가 부끄러워져서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써. 어질러진 장난감을 정리하면서 사실은 어제 아이 한 번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고 오로지 화와 짜증만 냈던 너에게 말하고 싶어. 아직은 애야, 아직은 어려. 그리고 너 역시도 지금까지도 네 엄마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까 내려놔.

화 낼 시간에 한 번 안아주고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해 줘.


시간은 금방 흐르고 어느 순간 아이가 네 곁을 떠나버릴 때가 올 때,

그때 후회하지 말고.


세상에 그래야 하는 것은 없고

원래 그런 것도 없어.

그저 순간에 맞춰서

사랑하면서 사는 거야.


알잖아.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유치원 문 앞에서부터 꼭, 끌어안아 줘.




photo by Nathan Ander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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