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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14. 2022

크롱은 목욕 중

잘 준비하려고

잠자리를 보고 있는데


바닥에 놓인 크롱 번쩍 들더니

갑자기 스텐 볼에 넣고선

목욕 중이란다.


크롱 너는 목욕해야지,

그래야 깨끗하게 놀지,

하며 어깨까지 푹 담가주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저는 목욕하자면

죽기보다 싫어하면서

아무 말 못 하는 우리 크롱은

꼭 씻겨야 하는


너를 어쩌면 좋니


어쨌거나 크롱은 목욕 중

우리 딸은 목욕시키는 중




아이들은 보는 것 듣는 것을 그대로 배운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자기 전에는 꼭 씻고 자야 한다고 으름장도 놓고 살살 구슬려도 보며 가르쳤더니 오늘은 웬일로 군소리 없이 씻더니 급기야 크롱도 목욕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떤다.


어차피 그건 솜뭉치라 목욕하면 안 돼.라고 칼 같이 말하려다가 동심을 파괴할까 싶어서 그럼, 크롱도 목욕하면 너무 좋겠다, 맞장구 쳐주니 좋아한다. 상상 속 욕조에는 물이 콸콸콸 나오는지 군데군데 씻기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나 역시 다른 자잘한 장난감 정리하다가 그만 크롱을 깜빡 잊고 말았다. 식탁 위 스테인리스 그릇에 놓인 크롱. 갑자기 소환되어 씻겨진 크롱. 아무것도 모른 채 누워있는 크롱.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인 제공자(?)인 우리 딸의 유유자적함이 웃겨 사진을 찍고 있는데 따님께서 달려와 나도, 나도 찍을래, 한다.


안 주려다 슬쩍 휴대폰을 넘겨주니 신나서 차차차차차차차차알칵, 연이어 40장 정도를 냅따 찍어버린다. 넋 놓고 있다 보니 11시. 그만 자야 할 시간이라 급하게 방으로 들어와 금세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우리 둘은 눕자마자 신나게 드르렁 코 골며 자고 있는데 무심한 모녀 때문에 밤새 크롱은 몸이 불어 터질 지경이다.


크롱은 아직도 목욕 중.

무려 7시간째 목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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