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손으로 슥슥
그림 좀 그리고 싶은데 딸내미가 엄마 뭐 하느냐고 다가와 버렸다. 그리던 그림 마무리하고 글도 좀 쓰고 싶은데 시간이 멈춰 버린 게 아쉬워 오늘은 한 번 녀석과 같이 놀아 볼까 마음먹고 거실로 나간다.
하얀 스케치북에 색연필, 크레파스, 사인펜으로 그리는 건 해봐도 절대로 만질 수 없었던 엄마의 하얀 태블릿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건 처음이라 소리를 지르며 기뻐한다.
엄마, 엄마, 이거 봐! 이거 보세요!
아빠, 아빠, 이거 봐!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것들도 아이에겐 모든 게 새로울 수 있단 생각에 내심 절대 만지지 못하게 했던 태블릿으로 그림 그리기 활동도 잘한 것 같아 뿌듯하다.
빛 번짐 효과도 내어 보고 마커로 그림도 그려보고 구름도 만들어 보고 까만 하늘에 별도 넣어 보더니 갤러리에 수북이 쌓인 그림을 보고는 이거 자기 작품, 이라며 뿌듯해한다.
손가락 한 번에 선이 생기고 여러 번에 줄이 그어지는 장면이 얼마나 신기할까. 얼마나 재밌을까.
어쩌다 보니 나가지 못해 늘 즐겨 보여주는 영상 중 하나가 jj 튜브. 아빠와 아이 둘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테마 파크에 가서 노는 것을 담은 영상인데 가족들이 단란해 보여 나도 좋아한다. 우리 딸은 1년 가까이 그 영상을 보며 늘 랜선 속 아이들 놀이에 공감하며 같이 웃는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도 짠한데 당장은 뭘 더 해주지 못하는 마음이 늘 불편했는데 오늘은 어쩐지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래, 나도 이런 것쯤은 해줄 수 있는 엄마잖아, 하는 생각에 조금은 기쁘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아이가 '그림' 그리는 데 소질이 있었으면 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걸 알지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항상 그림을 그리고 노는 상황을 많이 연출해 왔다.
이번에 태블릿으로 디지털 드로잉(?)까지 해 봤으니, 어쩌면 나의 작전이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아이야, 엄마는 다 계획이 있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