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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26. 2022

온전히 믿어주는 법

안녕 나는 코딱지야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

요리조리

우당탕탕 

쿵쾅쿵쾅

엉뚱 발랄 코딱지




혹시나 여자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한 번 정도는 꼭 들어봤을 것이다. "안녕 나는 콩순이야,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 엉뚱 발랄 콩순이!" 콩순이 장난감엔 꼭 들어있는 이 주제곡을 우리 딸도 좋아한다. 사촌 언니에게 물려받은 콩순이 피아노의 자동재생 버튼을 누르고 온 몸을 움직여가며 춤을 추는데 아주 귀엽다. 


그런데 요 며칠은 그 메인 주제가의 가사를 바꿔 부른다. 안녕 나는 코딱지라든가, 안녕 나는 똥꼬라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가끔 설거지하면서 내가 동요를 흥얼거리다 바꾼 것을 들었는지 5살이 되고 나서부터는 노래 부르는 폼도, 가사를 바꾸는 센스도 꽤 많이 성장했다. 


며칠 전에 부른 저 '안녕 나는 코딱지야'노래를 부르는 게 하도 귀여워서 몰래 사진을 찍었는데 노래를 부르다 말고 의자에 올라가 발레까지 시늉 낸다. 한쪽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두 팔로 균형을 맞추면 되는 '아라베스크'를 시전 하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엽다. 다행히 놀란 내 영상 속에 이 모든 것이 담겨 한 동안 출퇴근 길의 힐링 영상으로 선택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온전히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 순간 깨닫는다. 또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며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책임지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실전에서 힘든 지도 매 순간 느낀다. 나의 엄마는 나를 사랑으로 키웠지만 태생이 약했던 내가 행여나 잘못될까 봐 지나치게 과보호했다. 


약해서, 부족해서, 어리숙해서 안된다는 수많은 이유를 평생 듣고 살다 보니 마음 한편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들어차 있다. 물론 성인이 되면서 부단히 노력해 나 역시도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난 할 수 없을 거야, 난 부족하니까, 하는 약한 마음이.


태교 할 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거였다. "나비야. 엄마가 불안하고 두려워해도 너는 그러지 마. 너는 네 스스로 뭐든 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야"라고. 임신 중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불안해해서 예민한 아이가 태어날까 봐 걱정된 마음에 늘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그만큼 간절했던 것이다. 나의 불안을 우리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간절한 마음이 와닿았는지 아직까지는 누구보다 해맑고 밝게 지내고 있는 녀석. 물론 아직 너무 어려서 '불안'할 것도 '걱정'할 것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이 시기에 충분한 사랑을 온전히 받고 네가 할 수 있음을 믿어준다면 훗날 불안과 걱정이 밀려드는 시기가 되어도 그 시기를 버틸 수 있는 든든한 마음밭 하나가 생기지 않을까.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 겨우 일궜던 마음밭을 조금만 더 일찍, 그리고 단단하게 일굴 수 있다면 우리 딸의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녀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녀석을 상상하면서. 


안녕, 너는 내 딸이야.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그래도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Photo by Denise Ja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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