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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09. 2022

저녁이 있는 삶

유치원 생활 한 달,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유치원 생활 한 달째.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중 가장 실감하는 것은 바로 '수면시간'이다. 예전엔 12시가 다 되어 자던 녀석이 유치원에 가는 순간 변했다. 신나게 놀고 오면 한두 시간 있다가 곯아떨어지기 시작한 것. 그도 그럴 것이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어린이집과 달리 낮잠을 아예 안 자니 체력이 방전된 상태에서 귀가하기 때문일 테다. 처음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차라리 낮잠이라도 잤으면 싶을 정도로 집에 오자마자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며 심술을 부리다가 잠들기 일쑤였으니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자 몸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3월 초 같은 짜증은 많이 줄었다. 대신 8시가 되면 슬슬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요 위에 누워버린다. 요 며칠 계속 그러다가 어제는 마루 소파에서 그냥 잠들어 버렸다. 그때 시간이 6시 30분이었으니 엄청 피곤했던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러면서 다음 날 새벽 6시부터 눈을 뜨긴 하지만) 그리고 꾸준히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인다.


8시에 잠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갑자기 내게 자유시간이 생겨버렸다. 그동안은 재우다 같이 뻗어버렸는데 이상하게 요새는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이벤트처럼 생긴 여유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어 애를 재우고 나와서는 남편과 영화를 보거나 커피 한 잔 마시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5년 전부터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일인데 5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하게 됐다. 아이의 방해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작년에 개봉한 스파이더맨을 끝까지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주어진 시간이 매우 값지다. 부부로서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으니.

그래서 이렇게 주어진 시간이 매우 소중하다. 그림 하나 더 그릴 수 있고 글 하나 더 쓸 수 있고 조용히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그리고 덕분에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해질 수 있으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은 이렇게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서가 아닐까. 엄청난 돈을 품 안에 가지고 있는 것보다도 내가 당장 하고 싶은 무언가를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쌓이면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 건 아닐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나를 확인하고 채워갈 수 있는 순간이 보장될 때, 그때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랜만에 새벽 공기를 마시며 글을 쓰는 지금이 무척이나 좋다. 오래간만에 마음이 편하고 머리도 맑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로서 올곧이 서 있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니, 당장 내일의 기상이 조금 힘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흠뻑 즐겨야겠다.

오늘 딸내미가 내게 준 선물을 기꺼이 받아 즐겨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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