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May 03. 2022

나의 요리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유튜브보다는 책을!

  요리가 취미가 되었다. 하지도 않는 '영화감상'이나 듣는 것만 듣는 '음악 감상'이 아니라 '요리'를 취미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2년 만의 쾌거다. 이게 다, 내 요리 선생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히 만나, 호기심에 따라 했다가 이제는 선생님 없이 요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모든 일의 근본은 '요리 선생님' 에게 있다. (물론 좋은 의미로!)


  만개의 레시피는 좋은 요리 어플이지만 소위 말하는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들쑥날쑥한 재료, 정량이 아닌 양념,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양념의 종류 같은 것들이었다. 김치찌개를 끓여도 사람마다 레시피가 다 달랐다. 어떤 사람은 참기름을, 어떤 사람은 식용유를 넣고 김치를 볶았는데 다양하다는 면에서는 좋지만 나같이 기본 개념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왜 그때 그때 다르지? 하는 생각은 자꾸 요리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였다. 뚝딱뚝딱 계란 씨, 따뜻한 주방, 팔숙이, 냠냠 간단 요리 등등등 다양한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여 메뉴를 보며 공부(?)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등갈비찜이 마음에 들어 만들어보려고 하면 다시 영상을 재생해서 처음부터 봐야 했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레시피를 캡처해서 저장해 두면 되지만 모든 게 서툰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눈썰미도, 센스도 어쩐지 부족한 나는 유튜브 요리 영상이 더 복잡해 보였다.


  처음엔 요리책도 꺼려졌다. 신혼 초 친구의 추천으로 샀던 <진짜 기본 요리책>이란 책이 내게 너무 안 맞았기 때문이다. 기본이라는데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고 메뉴도 너무 다양해서 지레 겁이 났던 것. 한두 번 해 먹다가 자꾸 실패하자 책장 깊숙이 넣어버리고 다시 꺼내보지 않았다. 기준 없는 요리는 방향을 잃었고 흥미는 떨어지고 하기 싫어졌다. 원래도 싫어했는데 더욱, 싫어진 것.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고른 책은 달랐다. 이렇게 살 수 없어 요리를 꼭 해야 할 때였다. 요리 못하는 엄마를 만난 죄로 매일 같이 김과 계란만 먹던 딸에게도, 몸이 아파 요리를 할 수 없는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에 다시 한번 심기일전해보자는 마음으로 고른 책이었다. <만원으로 일주일 반찬 만들기>라는 책이었는데 메뉴 구성부터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나같이 배달음식만 시켜먹다가 어느 순간 전환점을 맞은 사람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었다. 목차 속에 자리 잡은 메뉴도 내게 알맞았다. 콩나물 무침, 시금치 무침, 오이 무침, 어묵 볶음처럼 아주 기본이 되는 메뉴부터 밀푀유 나베, 돼지고기 콩나물밥, 가지 밥처럼 약간은 노력이 필요한 메뉴까지 순차적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 차근차근 연습해 보기에 좋았다. 특히 요리 페이지마다 팁이 있어 '빼도 되는 것', '추가해도 좋은 것' 등이 쓰여 있어서 없으면 자연스럽게 빼게 되어 요리하는데 부담이 없었다. 올리고당과 물엿의 차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둘 다 사던 시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요리의 결과물이 내 입맛에 꼭 맞았다. 그동안 알음알음 봤던 책이나 블로그 등의 레시피로 음식을 해도 내 입에 꼭 맞은 적은 많지 않았다. 언제나 2%씩 부족하거나 넘치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책의 레시피는 정말 입에 찰싹 붙었다. 남편도 네가 직접 한 것이냐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나 역시 하나둘씩 만들어 보고 자신감이 붙었다. 오이무침에 들어가는 양념을 다 외우진 못하지만 맛을 기억하곤 조절할 수 있게 됐고 친정엄마의 두부조림과 다른 맛의 두부조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참나물, 미나리와 같이 한 번도 내 손으로 사지 않던 재료를 사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콩나물만, 아니 솔직히 이미 다 만들어진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샀을 텐데 이 요리책이 손과 입에 맞자 변화가 생겼다. 한 번 도전해 볼까, 한 번 사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들이 자꾸 들었다. 특히 '가지'를 사서 만들었던 가지 밥은 대성공이었는데 싫어하던 가지가 조금은 좋아지는 계기가 됐다.


  최근엔 시아버지의 생신상을 성공적으로 차려내기도 했다. 신혼초부터 요리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던 난 시부모님이 오시면 항상 시켜 먹곤 했다. 간편하다는 점에서 시켜먹는 게 좋으나 사실 힘들까 명절 때마다, 제사 때마다 늘 배려해주시고 이해해주시는 시부모님께 한 번은 내 손으로 직접 차린 생신상을 봐드리고 싶었다. 내 기준에서 도리라고 생각하는 일을 제대로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은근히 잡기 힘든 불고기 양념, 질기지 않게 만드는 낙지볶음, 알록달록하게 만드는 계란말이, 어른들 입맛에 알맞은 시금치 된장 무침 등 다양한 한식 메뉴로 한 상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이 책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2년 간 쌓인 손맛도 한 몫하겠지만 나와있는 대로 차분히 따라 하니 근사한 생신상이 되었다. 특별한 메뉴는 없지만 정성 가득 차린 한 상에 2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오신 시부모님은 꽤 많이 좋아하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난 내 요리 선생님이 참 좋다. 입맛에 꼭 맞는 간도,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메뉴도, 가끔은 시도해보고 싶은 특이한 메뉴도 모두 마음에 든다. 얼마 전 <2만 원으로 일주일 반찬 만들기>와 <한 달에 7kg 빠지는 다이어트 레시피>라는 책을 구매했는데 역시나 마음에 쏙 든다. (선생님의 유튜브 영상은 가끔 심심할 때 딸과 보는데 특유의 재미가 있다. 하지만 역시 난 책!)


  물론 아직도 힘들면 배달음식도 시키고, 분식을 사다가 먹기도 한다. 가끔은 도시락 싸기 귀찮아서 편의점이나 빵집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 따위를 사 가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과 다를 수 있는 것은 이 책들 덕분에 요리가 취미가 되어 어느 정도 바깥 음식을 먹고 나면 꼭 다시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어 진다는 것.


  어제도 회사에서 있던 일을 퇴근길에 다 떨치지 못하고 그만 퇴근 길에 음식을 사오고 말았다.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를 단숨에 먹어치워 버리기라도 하듯 먹고 또 먹다가 그만 얹히기까지 했다.


  식탁 위에 무심히 놓여있는 책이 밟힌다. 선생님의 레시피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만큼은 꼭, 나를 위해 만들어 먹겠다.


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