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Apr 20. 2022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민들레를 아는 나이



봄이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이지만 산책을 빼놓을 수 없다.

아이 손 꼭 잡고 동네 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지천에 피어있는 민들레를 만난다. 나무 밑, 돌 틈, 아스팔트 사이사이에 보이는 노랗고 앙증맞은 꽃. 하지만 억센 줄기가 어디서든 꿋꿋하게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꽃. 민들레.  아직은 하늘보다 땅이 가까운 우리 딸은 민들레를 보며 한참을 구경한다. 엄마 이건 민들레야? 그럼 나는 그럼~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딸의 첫 번째 꽃이자 요새 내 마음을 움직이는 꽃. 민들레가 반가워서다.


어릴 적, 아니 젊을 적은 민들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랑 고백에 빼놓을 수 없는 장미나 향으로 사람을 매혹시키는 프리지어가 좋았다. 가끔가다 특별하고 싶어 수국 같은 꽃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어떤 것도 마음에 차진 않았다. 애초에 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화려함에도 오래 유지되지 못하는 생명력이 싫어서였던 것 같다.


민들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6개월도 안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를 산책하면 그렇게 민들레 꽃이 곳곳에 밟혔다. 4월부터 6월까지 지치지도 않고 피어나고 씨를 뿌리고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며 참, 도시에 민들레가 많기도 많네, 라는 생각 따위를 했던 것 같다. 어디론가 방향도 없이 유유히 떠다니는 씨를 보며 막연한 부러움도 느꼈던 것 같다. 자주 보면 정이 드는 게 당연. 어디든지 시선을 두면 보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노란 민들레꽃이 마음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분명 꽃인데 민들레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공중화장실 앞 문틈이나 도서관 나무계단 부서진 틈같이 흙과 물과 볕이 있는 곳 어디서든 뿌리를 내렸다. 낙화 후 피어나는 씨앗도 그러했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흘러 흘러가다 우연히 정착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움을 티우기 위해 노력하는 듯보였다. 그 모습을 눈에 담다 보니 어느새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서든 꿋꿋하게, 누가 뭐래도 제 몫의 생을 이어가는. 그 모습이.


그래서

민들레가 좋다.


사는 곳에 연연하지 않고 제 할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도 좋고 봄에 걸맞은 노란 색을 뽐내는 것도 좋다. 밟혀도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는 용기도, 꽃잎이 져도 그 뒤에 다른 매력이 숨어 있는 것도 좋다. 민들레처럼 살면 좋으련만 살얼음보다도 연약한 내 마음은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며 부서질 준비가 늘 되어있다. 당장은 민들레처럼 살 수 없으니 그렇다면 민들레를 자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곳곳에 있어 위로받기 어렵지 않다. 덕분에 오늘도 나를 토닥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근 후 맥주 한 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