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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26. 2022

잠들지 않는 법

아이를 재우면서 버티기

아침잠은 없고 저녁잠이 많은 나에게 아이를 재우는 일은 사실 나를 재우는 일과 같았다. 베개에 머리를 대기만 하면 금세 잠들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통근거리가 멀어 당연히 잠드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가까워진 지금도 눕기만 하면, 혹은 푹신한 삼각 쿠션에 기대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는 걸 보니 비단 ‘일’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졸리면 자버리면 그만이지만 굳이 잠을 깨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남편과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고 둘째는 나홀로 있는 자유시간을 만들고 싶어서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끝없는 소음에 시달리다가 겨우 얻은 한두 시간의 여유를 밀도 있게 즐기고 싶은 마음에 매일매일 다짐한다. 오늘은, 오늘은 꼭 잠들지 않으리. 아이 낳고 난 후부터는 제대로 대화 한 번 해보지 못한 남편과의 시간이 간절하기에 기도한다. 오늘은 꼭, 함께 맥주 한 잔을 마시고야 말겠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다.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봐도 실패. 재우다가 먼저 잠든 건 부지기수고 잠깐 눈만 붙이자고 생각한 것뿐인데 새벽 4시쯤 깜짝 놀라 깬 적도 많다. 자면서 날려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보지만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그래도 며칠 전에는 어쩐 일로 아이 옆에서 토닥이다 잠든 것을 보고 나왔다! 덕분에 난 남편과 함께 조금 밀도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지금 읽고 있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더 읽을 수 있었으며 맛이 좋은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분명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본다. 열 번 중 세 번 정도밖에 성공하지 못한 방법이지만 많은 잠순이가 잠을 이기기 위해서 해본 나름 애정 가는 녀석들이다. 그저 아래부터는 가볍게 읽어주기를.




먼저,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카페인에 둔감한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카페인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저녁 8시에 9시 사이에 커피를 마시면 그때부터 새벽 두 시나 세시까지는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왕왕 있었다. 홍차, 녹차로는 안 되는 것들이 커피로는 되니, 잠을 자고 싶지 않을 때 제일 처음 하는 것은 커피를 들이켜곤 한다. 물론, 그것도 너무너무 피곤하면 약발이 떨어진다. 어제가, 그랬다.


그다음으로 하는 방법은 눕지 않는 것이다. 머리에 베개가 닿으면 허리에 바닥이 닿으면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편이라 애초에 그런 기회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그때 고안한 방법이 바로 '삼각 쿠션'을 활용해서 자는 척하는 것이다. 꼭 엄마가 옆에 있어야만 잠을 자는 딸아이를 위해 옆에는 있어 주지만 눕지 않는 것! 눕지 않고 비스듬히 기대어 자는 듯 자지 않는 것이 포인트.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잠들어 있다. 그러면 적당한 시점에 문을 열고 나오면 된다. (그런데, 어느새 비스듬히 누워 잠드는 법을, 터득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하는 방법은 워커홀릭인 내 성향을 십분 발휘한 방법인데 성격 상 자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 효과가 있다. 바로, 집안일을 하다 말고 재우러 들어가는 것. 그러니까 빨래를 돌려놓고 재우기, 설거지를 하다가 거품만 묻혀놓고 재우기 등이다. 일을 끝내지 않고 잠드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어 늘 밤 10시, 11시까지 집안일을 하다 들어가곤 했다. 애가 잘 때 달그락 거리면 아이가 깰까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웬 걸. 유치원을 다니며 체력적으로 힘들어진 녀석은 한 번 잠들기 시작하면 다음 날 아침까지 한 번을 깨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피곤해도 일이 남아있으니 나 역시 잠들지 않았다. 힘들긴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 (덕분에 며칠 전엔 연이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얻었다.)


이렇게 비법이랍시고 적었지만 사실 난 꽤 많이, 그리고 자주 실패한다. 잠이란 녀석이 쉽게 떠나가지 않기에 늘 눈꺼풀이 반쯤 감겨있긴 하다. 솔직히 피곤하면 그냥 잠들면 된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이런 웃기고 어리석은(?) 방법을 사용해라도 깨어있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다. '시간'을 갖고 싶어서. 마음 편한 여유를 갖고 싶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알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아이의 나이만큼씩 자유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1세면 1년, 2세면 2년, 그리고 5세면, 적어도 5년. 5년 동안 육아의 그늘 아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우물엔 물이 바싹 말라버린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체력도 안 되면서 그동안 채우지 못한 갈증을 어떻게든 채워보려는 노력을 이렇게 악착같이 하는 것이다. 나가 내 스스로를 조여서라도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정말 안될 것 같아서, 그렇게 다만 5분, 10분이라도 나를 위해 살고 싶어서.




그래서 난 오늘도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면서도 늘 남편에게 '오늘은 잠들지 않을 거야'라고 약속한다. 이미 날 너무 잘 아는 남편은 늘 'ㅎㅎㅎ 그래 (사실 기대 안 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난 늘 결심한다. 하루라도,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그 시간이 얼마나 내게 가치 있는지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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