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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l 23. 2022

동글동글 동그랑땡

이름도 귀엽고 맛도 좋은

하루 종일 서 있어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주방 앞에 선다. 지금 막 집에 와 땀이 송글 송글 하게 맺혀있는 이마의 땀방울을 대충 닦고, 도시락에 취미가 생겨 야무지게 구입한 다이소 표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에겐 잠시, 요새 들어 즐겨 보고 있는 '다니 유치원' 두어 편을 재생시켜 준다. 이상하게도 시간 제약이 있어야 능률이 오르는 성격이라 타이머에 30분이라는 시간을 맞춰놓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린다. 마침 아이는 다니가 친구들과 함께 키즈 카페에 놀러 간 내용이 재밌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다.


냉장고에서 두부 반 모, 돼지고기 100g, 대파를 꺼낸다. 원래 당근도 있으면 참 좋지만 며칠 전 당근이 똑 떨어지고 따로 사지 않아 없다. 사러 나가기 귀찮은 데다 동네 마트의 신선 식품은 영 상태가 좋지 못하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기로 한다. 두부의 물기를 쪽- 빼야 하는데 면포가 없다. 몇 년 전에 사두었으나 관리 실패로 상태가 좋지 않으니 뽀송뽀송한 키친타월로 있는 힘껏 물기를 제거해 본다. 한 장 뜯어 꾹, 두 장 뜯어 꾸우우 욱- 누르니 얼추 물기가 빠진다. 적당히 고슬고슬하면서도 촉촉한 듯한 두부 속이 완성된 듯하다.


다음은 돼지고기. 원래는 카레와 가지밥을 하려고 사둔 돼지고기인데 두 개를 만들고도 또 남아서 쓰기로 한다. 사자마자 바로 소분해 둔 돼지고기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그래 봤자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 그 이상을 넘기면 약간 찜찜한 느낌이 든다.)이 지나도 먹을 수 있다. 밀봉된 봉지를 뜯어 고기 냄새를 한 번 맡아본다. 다행히 매우 신선하다. 두부를 담아 둔 스텐 볼에 돼지고기를 넣으면 이미 절반의 준비는 끝. 참, 혹시나 조리 중 냄새가 날 수 있으니 후추나 미림을 넣어주면 좋은데 난 미림은 빼고 후추를 '톡톡'이 아닌 '톡톡톡토오오옥' 넣는다. 개인적으로 후추의 그 매콤한 듯 아린 맛이 좋다.


그리고 마지막 재료. 파. 어릴 땐 파가 죽도록 싫었는데 나이가 드니 파가 없으면 느끼하다. 적당한 크기로 담아 놓은 파의 초록 부분과, 하얀 부분을 적당히 골라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는다. 사실 신혼 초에는 대파를 일일이 다 썰어서 냉동시켜 쓰곤 했는데 해동하는 순간 녹는 데다 많은 양의 대파를 다 쓰지도 못하고 버린 적이 많아 아예 마트에서 까 놓은 대파를 소량씩 구매한다. 그때 그때 씻어 먹으면 낭비 없이 다 먹어 좋다. 아무튼 이제 늘어난 칼솜씨를 발휘할 때다. 도마 위에 대파를 놓고 칼을 쥔 후, 다다다다다다다다- 하면 어느새 대파가 쫑쫑쫑 썰어져 있다. 가끔은 이 칼질하는 맛에 요리가 좋기도 하다.


스텐 볼에 적당히 담긴 두부, 돼지고기, 대파면 모든 준비가 끝났다. 계란을 풀어 넣거나 부침가루(혹은 밀가루, 전분 등등)를 넣기도 하지만 난 귀찮으므로 과감히 패스. 게다가 며칠 전 본 백종원 요리 비책에서는 초간단 동그랑땡으로 앞선 재료만 넣어도 충분히 맛이 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므로 무조건 패스한다. 요리는 간단해야 다음에 또 하게 된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중요한 것을 빼먹었다. 바로 소금! 소금 간! 싱거운 것이 몸에 좋다지만 아예 간을 하지 않으면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다. 간장으로도 잡을 수 없는 맹숭맹숭함은 '음식물 쓰레기'로 직행하는 지름길. 고로 자주 쓰는 맛소금을 선택해 적당히 넣는다. 솔솔솔솔, 뿌리고 한 번 조몰락조몰락 섞어주고 살짝 간을 본다. 생고기가 매우 부담스러우므로 아주 사아아알짝. 싱겁다 싶으면 조금 더 넣어 조몰락조몰락. 아주 소량이어도 '간'은 볼 수 있다. 우리의 혀는 생각보다 아주 민감하니까.


딱 좋다. 이제 동글동글 모양을 잡고 부치면 된다. 계란 두 개 풀어 계란물을 만들어 두고 적당히 동그랗게 빚어놓은 반죽을 풍덩. 단단한 듯 촉촉한 반죽은 쉽게 풀어지지 않아 좋다. 앞 뒤로 계란물 골고루 묻혀 기름 가득 두른 프라이팬이 적당히 뜨거워졌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올려주면 치이이익- 그야말로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느 부침 소리가 주방에 퍼친다. 기름과 계란이 만나 풍기는 특유의 고소함에 방에 있던 남편도,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이도 달려와 힐끗거리면 조금만 기다리라며 돌려보내야만 한다. 불 앞은 위험한 데다 짜잔- 하고 보여주는 그 기쁨도 내겐 중요하니까.


아직은 불 조절이 어렵고 고기가 익는 타이밍을 잡는 게 어렵지만 적당한 때를 골라 뒤집고 모양을 잡아주며 부쳐본다. 노릇노릇 해질 때, 돼지고기가 적당히 익었을 때, 그때를 놓치지 않고 뒤집으며 살포시 눌러주면 정말 맛 좋은 동그랑땡이 완성. 비록 파는 것처럼 모양이 예쁘거나 노릇노릇 먹음직스럽진 않지만 만족스럽다. 접시에 동그랗게 돌려가며 올려주는데 삐비비빅-하고 알람 소리가 울린다. 30분. 30분 만에 이 모든 과정을 완성한 것. 불과 4년 전만 해도 아이에게 해줄 동그랑땡 부치기가 어려워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내가 맞나 싶어 뿌듯함을 감출 수 없다.


짜잔- 하며 내려놓으니 남편과 아이는 벌써부터 한 두 개 집어 먹는다. 김치에 밥, 김과 콩나물 무침, 그리고 반찬가게에서 산 반찬들 사이에 단연 돋보이는 동그랑땡을 보니 오늘 하루 종일 직장에서 치여 고생했던 내 마음도, 뾰족하게 날 서있던 모진 마음도 동글동글,  풀리는 것만 같다. 고기를 일절 먹지 않는 우리 딸도 맛있다며 포크를 연신 움직이며 유난히 막걸리가 생각난다며 남편의 너스레를 듣는 지금, 참 좋은 저녁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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