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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11. 2022

다시, 도시락?!

찬 바람이 불어오면 돌아온다고 약속했으니까요.

지난 1월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폭식을 한다. 원체 양 꾸러미가 적은 편인데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주체를 하지 못하고 음식에 손을 댄다. 예전엔 배가 부르고 졸린 느낌이 싫어서 소식을 하는 편이었는데 요새는 그렇지 않다. 직장을 옮기고 나서, 아니 아이를 낳고 나서, 아니 솔직히 말하면 스트레스 상황이 생기기만 하면 머릿속에 떡볶이, 김밥, 라면, 치킨, 피자, 그리고 감자탕 같은 것이 떠오르면서 어느새 배달앱에 접속해 있던 적이 많다.


소화라도 잘 시키면 상관이 없지만 소화력도 약해 꼭 한 번씩은 아픈 터라 요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월에 역류성 식도염 판정을 받고 그렇게 라면과 커피를 끊겠노라고 다짐을 해놓고서 7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급식을 먹으면서도 폭식, 집에 와서도 폭식을 멈추지 않으니 매일 아침 쓰린 속을 달래며 출근하기에 바쁘다. 남이 해준 밥, 급식은 너무나도 간편하고 편리하고 요새는 맛도 적절히 괜찮아서 만족도가 무척 높은 편인데 그래서인지 자꾸 더 먹게 되고 더부룩하게 된다. 게다가 과일이나 야채 같은 것은 자주 나오지 않아서 탄수화물이 넘쳐나는 식사를 할 때도 종종 있다.


어제 산 떡볶이가 아주 결정적인 계기가 되긴 했다. 수요일은 마의 요일인데(지난 학기에 1,2,3,4,5,6교시를 했던 악몽 같은 기억이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긴장을 했다 풀려 버려 몸에 쌓인 극도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어야만 하는 상황에 마침 떡볶이가 간절히 생각났던 것이다. 평소엔 잘 먹지 않는 아주 매운맛의 떡볶이와 기름이 좔좔 흐르는 튀김과, 뜨끈한 어묵을 먹고 나니 배는 부르나 역시나 속이 또 불편했다. 역시나 자고 일어 나니 또 속이 아프다. 요새는 속만 아픈 데서 끝나지 않고 몸무게도 늘고 찌뿌둥하다. 비루한 몸뚱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건강한 음식 좀 꾸준히 먹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렬히 솟구친다. 이 마음이 이번엔 곧바로 현실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스친다.


때론 충동적인 결정도 필요한 법. 문득 다시금 도시락을 싸고 싶어졌다. 최대한 부담 없이, 간편하게.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샐러드를 잔뜩 담은 샐러드 도시락으로다가. 요새 자꾸 체중이 늘어 걱정 중인 남편과 나를 위한 도시락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진 것이다. 건강한 음식으로 가득한 나만의 도시락을. 1년 가까이 도시락을 싸던 경력이 있으니 어렵진 않을 것 같다. 처음에야 어렵고 두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우니까. 게다가 직장도 가까워졌고, 일도 익숙해졌으니 할만할 듯하다.


아주 잠깐 (오전에 4시간 정도) 고민하다가 결국 또, 미급식 신청서를 제출해 버렸다. 아침에 든든히 밥 먹고, 점심엔 샐러드 위주로 건강하게 먹으면 어떨까? 지난번엔 지나치게 '압박'을 느끼며 도시락을 싸서 힘들었다면 이번엔 무조건 '간편함'을 추구하면 되지 않을까? 양상추, 양배추, 두부, 가지, 당근, 파프리카, 브로콜리, 닭가슴살처럼 아주 건강한 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서 샐러드 도시락 통에 담아 커피랑, 혹은 두유랑 먹으면 그 자체로 상처받아 힘든 내 위를 조금은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소소한 만족과 기쁨이 쌓이면 퇴근길에 떡볶이를 사서 꾸역꾸역 먹거나, 수납장에 있는 비빔면을 두 개 끓여 미친 듯이 흡입하는 일은 조금 줄어들 것만 같다.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침 찬 바람이 불면 다시금 돌아온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8월 중순. 곧 말복이 끝나면 찬바람이 천천히 다가올 것이다. 그 바람에 맞춰 내 도시락도 시즌3을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다시, 도시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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