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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17. 2022

[인터뷰] 지수의 이야기

그때 만났던 아이들 (2) "남긴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이야기 창작반 수업 속에서 지수는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였다. 차분한 인상에서 묻어 나오는 성정이 왠지 나와 결이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아이. 어떤 과제를 주든 제 시간 안에 제출하려고 노력했으며 제법 소설적 구성과 문체로 그럴듯한 작품을 써냈던 아이이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자신을 숨길 수 있는 필명을 만들고자 할 때, 자신의 이름 두 글자로 필명을 선택한 남다른 아이이기도 했고.


문득 <물방울>이라는 첫 작품의 첫 페이지에 담긴 장면과 심리 묘사가 뛰어나 꽤 많은 칭찬을 해 주었던 기억이 났다. 더불어 중2 때 1년 정도 가르치면서 얼마나 괜찮은 녀석인지는 몸소 느낀 터라 이번 기회에 은근히 한 번 연락을 해 보고 싶었다. 작년 1년 동안 녀석이 없었다면 온라인 수업에서 그렇게 활기차게 수업을 할 수 있었을까? 언제, 어디서든 굴하지 않고 캠을 켜고, 어떤 말에도 늘 긍정적인 반응을 해준 덕에 그 반 수업이 늘 즐거웠다는 것을 녀석은 모를 테다. 


게다가 원래 전근을 가지 않았다면 함께 하고 싶었던 글쓰기 동아리 정예 멤버 중 하나. 2년 정도가 지난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무릅쓰고 연락을 시도했다. 성실한 성격답게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너무 오랜만이에요 선생님!'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우리만의 조심스러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1. 요새 어떻게 살고 있어? 얼른 썰을 풀어 보아라!      

 저는 요즘 예비고 1의 무게를 느끼며 지내고 있어요. ㅠㅠ


2. <이야기 창작반>에 들어오기 전에도 이야기를 써본 적이 있었니? 

 개학하기 몇 달 전부터 관심이 생겨서 시를 써왔어요.


3. 소설이든 에세이든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네게 어떤 의미니?

 제가 정리하지 못하는 감정과 상황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4. 2020년에 <이야기 창작반>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 (좋은 것이든 힘든 것이든)

 물방울의 최종본을 제출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5. <이야기 창작반>을 통해서 얻은 것을 적어 본다면? 

 맞춤법들과 띄어쓰기가 교정된 것과 강렬한 추억!


6. 우리가 공식적으로 두 권의 책을 냈는데, 책을 내고 난 후 내게 찾아온 변화가 있을까? 있다면 무엇인지 자세히 적어줄래? 

 제가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게 새롭고 신기해서 지금도 남길 수 있는 것들을 남기고 있어요. 예를 들자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크로키를 하면서 채운 노트들을 보관하고 있어요. 


7. 지금도 혹시 글을 자주 쓰는지 궁금해. 쓴다면 어떤 글을 쓰는지? 

[질문 2]에서 언급한 시를 계속해서 쓰고 있어요. 


8. 중학교 시절 <이야기 창작반>과 같은 프로그램을 또 한 다면 언제, 어떤 학년에  해보고 싶어? (고등학교도 상관없어.) 

 음... 대학교 1학년? 




"선생님! 다 했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설문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피식, 하고 웃음이 났다. 앞선 유진이와 지수의 스타일이 너무도 달라서다. 유진이는 늘 언제나 제 생각을 길게 표현하는 아이, 지수는 언제나 간단명료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아이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같은 질문에도 이렇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스쳤다. 


만약 직접 대면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추가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꽤나 많았다. 왜 <물방울>(지수의 첫 작품)을 제출할 때 가장 인상 깊었는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교정받은 것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주 약하게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 입장이었던 것 같다.) 강렬한 추억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지만 그럴 수 없어 진심으로 아쉬웠다. 아주 잠깐, 원래 22년의 계획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제가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에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지수는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미 책 두 권에 내가 만든 세계를 남긴 사람 말이다. 그 말 한마디에 그만 나까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수를 그렇게 만들어준 멋진 사람 말이다. 괜히 들떠 그 부분만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무장된 녀석은 아마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제가 바라본 세상을 그려낸 크로키와 글이겠지만,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또 다른 무언가를,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녀석의 삶의 시작에 나의 수업이 있었다는 게 감사하다. 




Photo by Michal Czy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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