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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18. 2022

누구든지 글쓰기를 좋아하게 될 거야(?)

애초에 난 중학교 3학년 국어를 담당할 예정이었고 작년 11월부터 미리 모집한 11명의 정예 멤버들과 함께 '글쓰기 비밀결사단'을 만들어 글쓰기 동아리를 운영하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수업과, 아이들의 삶을 녹여낸 글쓰기를 통해 하며 나도 힐링하고 아이들도 글쓰기의 참맛을 알려줄 참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꼭 1년이 지난 시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2월 초. 예상치 못하게 발령이 난 것이다.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워져 삶의 질은 수식 상승했지만 아이들과 래포 하나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새 학교에 가는 상황이라 솔직히 두려웠다. 당장 새 학교로 출근하며 분위기도 파악하고 학교 주변 환경에도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뼛속부터 개복치. 한 곳에서 마음을 열고 적응하려면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걸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업은 은근히 자신 있었다. 마침 2년 전 사랑해 마지않던 <이야기 창작반>을 성공으로 이끌지 않았던가. 게다가 중1. 남학생과 여학생 대부분에 인정받은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전적이 있는 만큼, 수업은 두렵지 않았던 것 같다. 국어 과목이야 교과서마다 지문이 달라지는 것이니 그때그때 수준에 맞춰 학습지를 만들면 됐고, 순수하고 귀여운 우리 중1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면 됐으니까.


 예상대로 1학년 담임이 되었고, 2년 전과 동일하게 주제 선택 프로그램 34차시를 기획해야 했다. 걱정은 없었다. 글쓰기와 첨삭엔 나름 노하우가 있다고 믿었기에 <나도 작가다>라는 프로그램 계획했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온 아이들을 '당연히'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리고 1학기 말이 되면 아이들의 글을 엮어 책을 한 권 정도는 출판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행복한 결말이 나왔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글쓰기 수업, 그러니까 나의 야심찬 주제 선택 프로그램은 실패했다. 그냥 실패도 아니고, 아주 참담하고 절망스러운 실패. 겨우 10년 차인 네가 어디 명함을 내미냐는 듯이 아주 무참히.


분명 딱 두 살 차이였을 뿐이다. 2007년생과 2009년생. 모두 코시국을 지나왔고, 중학교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아이들이라는 점은 분명 같았다. 그런데 글쓰기 결과물은 확연히 달랐다. 이전 학교의 <이야기 창작반> 아이들이 한 주제에 열 줄 이상의 내용을 적어낼 수 있다면, 옮긴 학교의 <나도 작가다> 아이들은 긴 글을 쓰질 못했다. 전에는 25명 중 20명이 막힘 없이 쓸 수 있었다면 지금은 20명 중 5명 만이 뭐라도 술술 써낼 수 있었다. 아주 사소한 차이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냈고, 수업을 하는 내 열의를 조금씩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원인은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어쨌거나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5년은 근무할 곳이었다. 국어 교사이기에 글쓰기를 빼놓을 수도 없는 상황. 그저 애들이 못한다, 기초 학력이 부족하다, 코로나로 원격 수업을 해서 못 배워서 그런다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문제를 분석해 보고 싶었다. 그 와중에도 '장래희망'을 '장례희망'이라고 쓰고 '날개'를 '날게'로 쓰면서도 틀린 줄을 모르는 해맑은 아이들의 글이 적힌 종이가 내 옆에 수십 장 쌓여갔다.


이전 학교는 순전히 100% 희망자들이 모인 (적어도 90% 이상은 희망) 반면 이곳은 희망이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 반 별로 묶여 강제로 배정된 수업을 들어야 했다. 내가 맡았던 첫 번째 반은 우리 반. 아직 아이들과 친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글쓰기를 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반 아이들은 국어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20명 중 딱 2~3명 만이 글쓰기를 좋아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순하고 착한 우리 반은 글보다는 말을 즐겨했고, 학기 초 자기소개서에도 절반 이상 채우길 힘들어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또, 올 3월은 코로나 확진자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매일 반에 확진자가 4~5명씩 나왔다. 어제 나왔던 친구가 오늘은 나오지 않고, 내일은 자신이 나오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깊게 고민하고 사유하며 치열하게 써야 하는 글쓰기 활동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도 같다. 심지어 2009년생은 초등학교 5, 6학년 때 코로나를 겪은 아이들 아니던가. 어휘력도 글쓰기 실력도, 표현력도 모두 2019년, 4학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옆에서 힌트를 주고 도움을 주어도 제 생각 다섯 줄 쓰기를 힘들어했다. (물론 모든 중1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근무하는 환경의 차이도 분명 있다.) 그러니 주제를 파악해 긴 호흡의 글을 써야 하는 <나도 작가다> 활동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신규 교사 못지않은 어리바리함을 장착한 전입교사였다. 전 학교에선 나름 배테랑이었지만 이 학교에서는 중1 신입생과 똑같은 정보를 지닌 상황. 아이들의 수준도, 주변 환경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야기 창작반>에서 하던 것을 그대로 하려니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나니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5월이 되었고, 내 옆엔 주제도 목적도 결과도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엉망진창의 학습 결과물만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쓰게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쓰며 치유받은 기분을 알려줄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다. 서점을 찾고, 도서관을 찾고, 인터넷을 뒤지며 다시금 자료를 모았다. 국어를 좋아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매주 수요일 5,6교시에 진행되는 <나도 작가다>가 답답한 시간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커스터마이징.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수업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는 2020년이 아니며 <이야기 창작반>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출판은 집어치우고 일단 내면에 쌓인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기로 했다.


아직 1학년이니까. 즐겁고 재밌게

수업하는 게 맞다 싶었다. 빼곡한 빈칸 채우기 학습지는 없애 버리고 딱딱한 교과서는 잠시 덮어 두기로 했다. 글쓰기든, 책 읽기든, 발표든, 토론이든 이 학교에 온 이상 뭔가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내적으로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내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2022년, 4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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