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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20. 2022

시간을 달려서


예민한 10대. 뭘 해도 힘들고 뭘 안 해도 힘든 그 시절, 우리 집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35평짜리 아파트에서 방 두 칸짜리 반지하 방으로 이사하면서 그동안 누렸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당연하게 꿈꾸던 미래 대신에 묵직한 현실이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던을 멈추고 조기 졸업, 취업, 자퇴 따위를 검색하기도 했다.


사정을 알리 없는 친구들에게 유난히 못되게 굴었다. 친절을 무시하고, 다정을 위선이라 여겼다.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 가만히 두라고, 괴롭히지 말고 나 좀 그냥 내버려두라고 시위한 적도 많다. 남들 다 꿈꾸는 핑크빛 미래 따위 그릴 수 없는 상황이 싫어 심술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대학을 갈 수는 있을까? 합격해도 등록금이 있기는 할까? 원하는 글을 쓰며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 무척이나 불안해졌다. 일 하러 떠난 엄마, 늦게 들어오는 아빠, 생계의 일부를 책임지느라 멀리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니가 없는 밤이면 슬프고 슬픈 생각이 꼬리를 물고 흘러내렸다.


그럴 때 나는 말없이 종이를 꺼내 상상을 하곤 했다. 늦은 밤 독서실에서, 혹은 마루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에 앉아 말없이 앉아 글을 썼다. 누구도 물어보지 않고, 누구도 궁금해하진 않지만 꼭 맞이 하고 싶은 나의 미래를 끝없이 상상했다.


스무 살이 될 수 있을까 계속 불안해하는 나에게 난, 다짐하듯 대답해 주었다. 그럼, 넌 될 수 있을 거야. 아마 나는 원하는 대학에 가 있을 거고,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을 거야. 그래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행복하게 지낼 거야, 그리고 멋진 남자 친구도 사귈 거야, 하고.


아주 일시적이었지만 효과는 좋았다. 그 글을 쓰는 찰나는 분명히 확실히 행복했기 때문이다. 종이에 꾹꾹 눌러쓰면 눌러쓰는 만큼 그 미래를 꼭 보고 싶었다. 상상 속 모습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될수록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됐다. 엄청난 에너지가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견딜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얻었다. 그렇게 살고 살다 보니 하루가 일주일이, 일주일이 1년이 되었고 시간을 달리고 달려서, 지금 이 순간을 맞이했다.


아주 사소한 방법이었지만 덕분에 난, 아이들 앞에 서 있다.




학교엔 생각보다 힘든 아이들이 많았다. 가정 내 불화, 친구 관계, 성적 문제, 혹은 본인의 성격 문제 등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아이들부터, 학교가 오기 싫은 아이들까지 상황은 넘치고 넘쳤다.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짠해서 손을 꼭 잡고 같이 울어주고 싶은 아이, 여력이 된다면 졸업하는 날까지 담임을 하며 마음의 힘을 길러주고 싶은 아이, 당장에라도 자해를 할까 불안해 전전긍긍하게 하는 아이까지. 교사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사연 속 주인공이 내 주변에 넘쳐 났다.


그런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었다. 잘 될 거야, 잘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 괜찮아, 토닥이는 건 금세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극도로 예민하고 힘들었던 우울의 늪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작지만 확실한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 당장 중3이 될 수는 있을까요?라고 묻는 중1에게, 중3이 되고 난 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싶었다. 돈 한 푼 들지 않는 '상상'의 힘을 빌어서 아이들의 현생을 단단히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1년 후 자신에게 편지 쓰기 활동이다. 다소 고리타분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특유의 꼼꼼함이 무장된 이 활동은 모든 아이들이 처음엔 싫어했다가 1년 후 자신의 편지를 돌려받았을 때 대부분 만족했다. 적어도 전학 외에 다른 이유로 편지를 받지 못한 아이는 없었고, 적어도 과거보다 나쁜 미래를 맞이한 아이들도 없었다. 어두운 현실을 밝게 비춰줄 수 없다면 다가올 미래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코로나로 2년의 공백이 생긴 지금의 중1에겐 더더욱 이 활동이 필요했다. 글쓰기 수업이 무르익어가는 시기에 꼭 한 번은 분위기를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힘들지? 지치지? 당장의 내일이 그려지지 않지? 그럴 땐 너를 힘들게 하지 말고 네 미래를 꿈꿔봐, 그러면 혹시 알아? 그 에너지에 네 삶이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지?


그리고는 준비한 예쁜 편지지와 봉투를 꺼냈다. 잔잔한 음악을 틀고서 칠판에 꼭 이렇게 적었다. "졸업을 앞둔, 혹은 1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러면 아이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디자인의 편지지를 들고 제 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공부는 못하지만 태권도를 잘하는 녀석은 체고를 꿈꿨고, 카페 사장이 되고 싶은 아이는 관련 공부를 하고 싶다고 쓰는 것 같았다. 현생은 팍팍해도, 미래의 스스로는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의 글을 볼 수도 없고 볼 생각도 없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편지 쓰기 수업을 할 때마다 공기가 그렇게 느껴졌다.


선생님, 우리도 하고 싶은 게 있고, 꿈꾸는 미래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이 오고 가는 활동에선 나의 진지함은 배가 된다. 풀 여섯 개 정도를 미리 준비해두고 편지봉투에 밀봉하는 방법도 꼭 알려준다. 의외로 풀칠조차 잘 못하는 아이들, 편지 쓰기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아서 나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면 대다수의 아이들이 제 몫의 편지를 작성해 낸다. 학번과 이름을 분명히 적고 봉투에 넣은 후 밀봉을 하고 나면 대충 20개 정도의 편지가 모이는데 그걸 나는 꼭 모아서 타임머신에 담아 둔다.


비밀금고 같은 것을 사거나, 여의치 않으면 튼튼한 종이가방을 활용해 모두 담고, 잠가버린다. 이번 해에는 같이 비밀번호를 만들어 보았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좋아한 데다 번호가 더 기억에 잘 나서 좋았다. 이후, 꼼꼼함이 무기인 내 장점을 살려 잘 보관해 두었다가. 정말 약속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반드시 돌려주었다. 담임을 할 때에는 담임이 끝나는 종업식에 주었고, 중3을 가르칠 때에는 졸업식에 나누어 주었으며, 중간에 전학을 가는 아이도 잊지 않고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잊고 있던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순간, 아이들은 묘한 만족, 묘한 행복, 그리고 묘한 감동을 느끼는 듯했다. 힘들게 지나온 과거의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그보다도 못한 모습으로 여전히 하루를 견디어 가고 있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래도 달리고 달려서 온 시간의 끝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묘하게 교차하는 그 순간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임은 분명하다.




한 동료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는, 흘러가는 강물에 마음을 더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만난 아이들의 흘러가는 인생에서, 힘든 순간을 잠시나마 잊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달리고 달려서, 꿈에 그리던 편안한 훗날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흘러가는 강물에 1g의 마음을 더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5월에 쓴 1학년 3반의 '1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비밀금고에 담긴 지 벌써 5개월째.

녹음을 지나 가을이 오며 계절이 무르익은 것처럼

아이들의 삶도 무르익어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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