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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22. 2022

나의 티끌 같은 재능

네가 좋아하는 거 딱 한 가지만 끝내주게 잘하면 된다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묵직하게 다가왔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10대 때 그렸던 꽃길 따위는 없다는 것을 매 순간 깨닫는데, 20대 때처럼 마냥 희망과 꿈에 사로잡혀 모든 도전해 볼 수는 없다는 것에 매일 좌절하는데 주위에선 남의 속도 모르고 조언이랍시고 떠드는 말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내가 '잘'하는 게 도대체 뭔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나 스스로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주변엔 뛰어난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다. 유튜브, 인스타, 페이스북을 조금만 뒤져 봐도 나보다 멋진 사람, 잘생긴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하다못해 사람들과 잘 어울려 주변에 인맥이 넘치는 사람이 가득했다. 자기 전에 멍하니 바라보던 그들의 모습에 정신을 놓고 있다 불현듯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에 초라한 나를 자각할 때면 무척 우울해진 것도 사실이다. 아, 저 사람은 저 나이에 대단하다, 멋지네, 벌써 저렇게 살다니. 하는 생각이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었다. 커피 한 잔 값에 벌벌 떨며 도시락 반찬을 고민하는 내 삶과 달리 아주 작은 네모난 창 속에 보이는 타인의 삶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내 삶은 어떤가. 정답이 정해진 인생이 싫다면서 어느새 '정답'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버린 나. 일렬로 줄 세우는 것이 특화된 한국 교육현장에서,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불행해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다른 반과 우리 반을 비교하고, 다른 교사와 나를 비교하면 할수록 마음속 불행의 씨앗은 쑥쑥 자라는 중이었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라고 아이들 앞에선 짐짓 어른스럽게 말하면서 정작 나는 최고의 교사가 되어 부러움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 깨닫자 순식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10년 동안 부단히 노력했지만 최고의 교사는커녕 행복한 교사의 발끝만큼도 도달하지 못한 지금, 그래도 아이들과는 소통을 잘하지,라고 믿었다가 최근 학교에서 잊을 수 없는 상처를 겪은 지금, 그래서 출근길이 마치 도살장 끌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지금, 더 이상 심각한 우울의 늪에 빠지기 전에 한 번쯤은 찾아볼 필요가 있었다. 아주 작지만 사소한, 아주 티끌 같지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나의 재능을. 내가 미처 발견하지 않았던, 너무 초라해서 사실은 죽기 전까지 절대 드러내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재능을.




 분위기나 기분에 따라 글씨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우습지만 그런 능력이 내게 있다. 귀엽고 몽글몽글한 글씨체, 진지하고 근엄하며 엄숙한 글씨체, 그리고 캘리그래피 할 때 익혔던 흘림체 등등. 대충 세어봐도 세 개 정도의 글씨체를 돌려가며 쓸 수 있다. 필적 조작이라면 우습지만 기분에 따라 글씨체를 바꾸면 누구도 내 글씨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가끔 그럴 때 이상한 짜릿함을 느낀다. 또, 아주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능력(?)인데 양손의 중지 손가락 첫 번째 마디만 구부릴 수 있다. (이 글을 쓰며 한 번 더 해보니 역시나 잘 된다.) 왜 되는지 알 수는 없는데 언니는 못하는 것을 보면, 초등학교 때 내 친구들도 못하는 것을 보면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부러 손글씨로 적었다. (원래 스트레스를 받으면 손글씨로 글을 적는다. 가끔, 아주 가끔-) 하얀 종이가 한 줄, 한 줄 채워져 나가는 것을 보니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맞아, 나 이런 것도 잘해, 나 이런 거 예전에 친구들이랑 겨루면서 놀았어, 하는 추억이 떠오를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어쩌면 행복하다는 감정은 엄청 대단한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조금씩 천천히 스며드는 것일지도. 문득 이거, 내 고객들에게도 써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글쓰기 수업의 마지막 주제를 정할 참이기도 했다. 문제는 어떻게 설득하느냐인데,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우리 사이엔 묘한 정이 켜켜이 쌓였으므로.


당장 다음 시간에 칠판에 제목을 적었다. 미리 적어둔 손글씨 학습지를 일일이 복사해 나누어주며 함께 글을 읽었다. 선생님의 아주 사소하고 사소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재능을 공유하며 우리는 서로 낄낄 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선생님, 저도 손가락 구부리기 돼요, 저는 혀를 마는 게 돼요, 저는 눈썹을!!!! 하면서 서로가 잘하는 것들을 찾다 보니 글감이 넘쳤다. 저마다 잘하는 것이 한 개는 꼭 있을 거란 말을 하니 아이들은 스스로를 계속 계속 탐구했다.


시간을 넉넉히 주고 계속 계속 생각해보라고 격려했다. 괜찮아, 괜찮아, 선생님도 뭐 엄청난 거 잘하냐? 아냐, 그냥 아주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잘하는 거, 그거 생각해보면 돼. 진짜 딱 한 개는 있을 걸?


아이들은 이것도 되나? 저것도 되나? 싶으면서 계속 짝과 대화하며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담 없는 반쪽 짜리 종이는 어느새 가득 채워져 20개의 티끌 같은 재능이 내 손 앞에 모였다. 글을 쓰기 전과 쓴 후의 아이들은 뭔가 달라 보였다. 어서 내 글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부터, 어쩐지 발표는 망설여지는 아이까지 두루두루 눈 맞춤하며 글을 나누었다. 마지막 수업, 마지막 주제였던 지라 아이들은 꽤나 진지했고 분위기는 무척 뜨거웠다.


언제나 발표 1번을 자처하는 가은이의 재능은 분위기를 업, 시켜 주었다.


<나의 특별한 거 같지만 특별하지 않은 재능>
바로 엄지손가락이 손목에 닿는 것이다. 이건 솔직히 특별한 재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사소하고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면 내가 일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재능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5~10분 만에 화장 풀매를 할 수 있다. 나는 이건 재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속시간이 촉박할 때 좋은 팁 일거 같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 고민상담이나 위로를 잘해준다. 이건 아이들 모두 인정한 내 실력이고 내가 생각해도 나는 잘해준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내 3가지 소소한 재능 발표였다.


가은이는 '증명'을 요구하는 애들 앞에서 정말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손목에 닿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모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재능이 맞는 것으로 모두 인정했다. (나는 그녀의 '화장 빨리하는 법'이 무척 부러웠다.)


미술을 좋아해 글쓰기 학습지에 매일 같이 그림을 그리고 책상에 친구들 얼굴을 그려 넣는 예주는 충격 고백을 했다.


난 특별하고 사소한 재능은 없다. 뭐... 말하자면 혼잣말하는 걸 잘한다. 집에서 숙제할 때, 핸드폰 할 때 언제든 혼잣말하면서 놀 수 있다. 이것은 6살 때부터 혼잣말하면서 인형놀이를 해온 짬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건 특변하진 않지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잘한다. 특히 사람 얼굴 그리는 것이 가장 자신 있다. 그리고 이건 나랑 좀 친하다면 알 수 있는 건데 난 후각이 예민예민해서 사람을 냄새로 기억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난 옛날에 살았던 골목을 가끔 걸을 때마다 옛날을 엄청 엄청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가끔 그 골목을 찾아간다(아, 그리고 애들이 변태 같다고 하는데 절대 아니니까 오해 작작했으면 좋겠다.)


엉뚱한 4차원 매력이 인상적인 예주의 '후각' 발언에 반 아이들과 내가 모두 긴장했다. 이제 앞으론 예주 앞에서 방귀 몰래 뀌고 사라지면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 얼굴'을 잘 그리는 것은 내가 증명할 수 있다. 몇 달 전에 그려준 내 얼굴을 인스타에 올리자마자 친구들이 '그냥 너'라고 인정해주었으니.


언제나 나를 보면 반갑게 웃어주는 재연이는 엄청난 재능을 숨기고 있었다. 난, 재연이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처음 본다.


좀 많이 쓸데없긴 한데 첫 번째로 혓바닥을 세 개로 만들 수 있다. 아는 사람은 알 거다....... 좀 많이 부끄럽다...... 두 번째로 휘파람을 불 수 있다. 이게 왜 재능이냐면 남들은 다 숨을 내쉬어야 휘파람이 불어질 거다. 하지만 나는 숨을 들이마셔야 휘파람이 불어진다.........


 재연이는 발표하며 무척 부끄러워했는데 혓바닥을 세 개로 만드는 것은 코로나 때문에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코로나로 마스크를 끼고 있는 지금을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휘파람은 엄청나게 신기한 일이어서 우리는 모두 '증명'을 요구했는데 정말로 들숨에 휘파람을 불며 연주를 시작했다. 어쩌면 오늘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재능 중 재능이다.


마지막으로 글쓰기 수업 17시간 동안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우진이다. 우진이는 첫날, 첫 시간 수업에 사진을 찍고 놀다가 엄청 혼난 아이다. 덕분에(?) 수업은 중단되고 최악의 분위기를 만들게 한 장본인. 하지만 그 후 매 시간 졸지 않고 정말 열심히 참여해 글쓰기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 수업에서도 머리를 쥐어짜며 적어낸 세 가지 재능이 그저 기특하다.


1. 옷을 15초만에 갈아입을 수 있다.
2. 목소리를 뭐라고 해야지 긁는 소리를 낼 수 있다.
3. 내가 맨날 몰래 친구랑 전화를 하는데 내가 2층 침대여서 맨날 1층에 핸드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1층에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2층에 나는 무선 이어폰을 끼고 전화한다. 이건 약간 재능이라고 하긴 좀 그렇다. ㅎㅎ


얼굴이 빨개져서 발표를 마친 우진이의 글은 투박하지만 마음에 든다. 어쨌거나 성의를 보여 적는 그 마음이 좋다. 그런데 심지어 옷을 15초 만에 갈아입을 수 있다니! 대단한 것이다! 다만, 갈아입고 난 후의 처참한 방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뿐. (ㅎㅎ)


매시간 재밌게 끝난 편이지만 '나의 티끌 같은 재능'을 발표하는 시간은 유난히 재밌었다. 너도 그래? 나도! 하는 반응이 곳곳에서 넘쳤고, 우리는 웃다 지쳐 배를 부여잡기도 했으며, 나는 네가 말한 것을 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웃긴 경쟁도 수시로 일어났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 하나 불쾌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편하고 즐거웠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각각의 뛰어남을 지니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다채로운 아이들에게 계속 줄 세우기만 강요한 꼴이다. 제 각각 잘하는 것을 탐색하는 시간 대신, 객관식 문제 하나를 더 잘 푸는 방법을 알려주는 셈이다. 1등부터 꼴등까지 주르륵 세우는 줄 속에 손가락 구부리기를 잘하는 능력은, 화장을 5분 만에 뚝딱 해내는 능력은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대단한 것을 가르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마흔을 가까이 살아온 선생님이 느꼈던 비교로 인한 좌절, 우울을 겪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너는 공부를 잘하지? 나는 노래를 잘 불러, 너는 요약을 잘하니? 나는 공감을 잘해,라고 세상의 기준과 조금 다른 자신의 능력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러 넣어주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다시 시험이라는 거대한 줄 세우기 흐름 속에 들어가 5년은 그 속에 허우적댈 아이들에게, 혹여나 300명 중에 300등을 하더라도 넌 남들보다 잘하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수업은 끝났고, 아이들은 대강의 인사를 마치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수업 시작 전보다 한 층 행복해진 것 같은 아이들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던 나는 탁탁탁, 두 손에 모인 20장의 학습지를 정리하고 분필을 정리해 교실을 나왔다.


교무실로 걸어가는 순간 생각했다.

어쩌면 미처 찾지 못한 내 티끌 같은 재능은, 이것일 지도 모르겠다고.

나를 만난 아이들에게 찰나의 '행복'을 안겨다 주는 것.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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