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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27. 2022

[인터뷰] 민서와 지희의 이야기

타임캡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글이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나도 작가다>라는 글쓰기 수업을 함께한 아이들의 솔직한 평을 들어보고 싶었다. <이야기 창작반>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는데 과연 <나도 작가다>라는 주제 선택 프로그램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을까? 좋아했다면 어떤 것을 좋아했을까? 그 아이들의 글로 이 기나긴 '글쓰기 수업'이야기를 마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자꾸만 욕심이 생겼다. 글로 만난 사이라 어쩐지 글로 소통하는 게 더 멋들어진 느낌이 들어, 인터뷰 방식은 '서면'으로 하기로 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열 개 정도 만들어 놓고 대상을 물색했다.


마침 글쓰기 수업 때에도 늘 성실하게 참여해준 데다 그 후에도 국어 수업 시간 내내 늘 열심인 민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민서는 회장도, 부회장도, 국어 부장도 아니지만 언제나 수업의 중심에 서 있었다. 늘 호기심이 많았고 수업에 관심이 많았으며 생각을 깨는 질문을 자주 해서 수업의 질을 높였던 친구였다. 덕분에 나는 '의욕'을 보이며 열심히 수업 준비도 했었다. 그런 민서의 솔직한 생각을 담는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또, 처음엔 글이 공개되는 것을 부끄러워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누구보다 열심히 글쓰기에 참여해주었던 지희도 떠올랐다. 따뜻한 시선, 그리고 재치 있는 글솜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친구다. 역시나 본인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이 '당연히' 좋다고 말해 참으로 고마웠다. 지희는 특히나 모둠 활동에서 빛이 났는데 어떤 친구와도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릴레이 이어쓰기도 그랬고, 짧은 시 쓰기 활동도 그랬다. 믿고 맡기는 학생, 그래서 수업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학생이었다.  


한창 수행평가에 정신이 없는 요즘 (10월은 학생들에게 수행평가의 계절이다.) 민서와 지희를 슬쩍 불러, 넌지시 인터뷰 질문지를 건넸다. 선생님이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있는데, 그 글에 너희의 생각을 실어 보면 어떨까 싶어서 이렇게 주는 거야, 하니 받자마자 너무나 좋다며, 열심히 써보겠다며 가져간 둘은 그다음 날, A4용지 가득 알찬 내용을 적어 가져다주었다. 각자 일정에 바쁠 텐데도 성실하게 작성해준 것이 고마워 꼭, 꼭, 꼭 잘 다듬어 보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쉬는 시간, 꼬깃꼬깃한 채 돌아온 정성 가득한 글을 읽어보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어쩌면 지치고 힘든 학교 생활을 민서와 지희 같은 아이들을 보며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꽤 길게 했다. 선생님이 쓰는 글에 실리게 되면 정말 영광일 것 같다고 온몸으로 표현해 준 그들의 대답을 최대한 살려,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본다.




나) 일단,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마워. 그냥 편하게, 솔직하게 답해주면 돼! ^^

민서, 지희) 넵!


나) 선생님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

민서) 음... 아마.. 처음이 글쓰기였나요? 목소리가 듣기 편하고 익숙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되게 유하게 생기신 것 같았어요. ㅎㅎ 아! 그리고 키가 짱짱 크셨어요.

지희) 처음 선생님 뵀을 때 되게 조용하시고 차분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또, 생각보다 키가 크셔서 되게 놀랐어요!


나) 다들 내 키에 놀랐구먼. ㅎㅎ  그러면, 쌤 하고 <나도 작가다>라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

민서) 음... 쌤이랑 수업해서 좋긴 한데요... 글쓰기는 좀... 싫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희) 솔직히 싫은 감정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내가 직접 글을 쓰고 친구들에게 발표하고 선생님께 보여드리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내 상상으로 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다가 내 상상에 대해 비웃을까 봐, 그 당시엔 두려움이 더 앞섰던 것 같아요. (웃음)


나) 그랬구나.. 글쓰기가 좀.. 처음엔 거부감이 있기는 하지. 그러면, 우리 함께 했던 17시간의 글쓰기 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었어?

민서, 지희) 타임캡슐이요!!!


나) 왜? 왜 가장 기억에 남았을까?

민서) 음.. 타임캡슐이 제일 재밌었는데요. 그것 때문에 졸업이 기다려질 정도??? 편지를 쓰면서 내 미래 모습을 생각하는 게 설레고 두근두근했어요. 또, 잘 졸업해야겠다는 동기부여(?) 같은 것도 생기고, 목표도 생겼고요. 여러모로 가장 기억에 남은 활동이에요!

지희)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마지막 시간에 활동했던 타임캡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타임캡슐을 선생님,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게 너무 설렜거든요. 글을 쓰며 3년 뒤의 내가 이 편지를 볼 생각을 하니 뭔가 기분이 묘하기도 했고요. 3년 뒤에 제가 뭘 하고 있을지, 그때의 키는 얼마나 클지, 이런 것들 때문에 더 묘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빨리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어요.


나) 선생님 도야. 너희랑 같이 만든 비밀번호도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게다가 너희랑 같이 내 타임캡슐도 묻은 것 같아서 선생님도 3년 후의 내가 기다려지긴 해! 그러면, 너희들 평소에 글을 좀 자주 쓰니? 어때?

민서) 자주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감정 소모가 큰일이 생겼을 때 핸드폰 메모장에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좀 자기 합리와도 되면서 감정도 정리되더라고요!

지희) 음... 저는 글을 잘 쓰지는 않아요. 글을 쓴다고 해도 친구에게 장문 편지를 쓴 것밖에는 기억이 나질 않아요! ㅠ.ㅠ


나) 음... 글쓰기라는 것은 네게 어떤 의미야?

지희) 글쓰기란... 제 기억 저장소라고 생각해요. 내가 글을 잘 쓰진 않지만, 글을 쓸 때 내 기억들을 모두 쏟아부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민서) 쓸 때는 좋지만 나중에 읽으면... 부끄러워지는 것? 옛날엔 수업 시간에만 하는 지루한 활동이었는데 요즘엔 쓰다 보니까 실력이 늘기도 하고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아요.

나) 선생님도 글쓰기를 하면 뭔가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아서 좋더라고. 극 내향인이라 그런지 말보다는 글로 정리하는 게 좋아!


나)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게. 제일 중요한 질문인데 정말 편하게 답해줘!! (부담 어린 눈빛을 보내며) 선생님과 함께 했던 글쓰기 수업이 네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지희) 먼저 글쓰기에 대한 많은 두려움과 걱정이 조금 줄어든 것? 사람들 앞에 나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제가 이렇게 달라진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해요.

민서)  제일 큰 건 진로가 바뀌었어요. <나도 작가다>와 국어 수업을 하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걸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꿈은 국어쌤으로~~~ >_<


나) 그렇게 말해주니 감동이야!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제안한 이 인터뷰에 성실하게 임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쌤과의 시간이 네게 의미있는 무엇이 되어 진심으로 영광이야. 오늘의 인터뷰(?)는 이만 마칠게.

민서, 지희) 네! 쌤!




어떤 영향을 주겠다, 고 마음을 먹고 수업을 하는 편은 아니다. 사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 마음이 닿지 않은 경우를 왕왕 봐왔기에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준비하고 애를 쓰되 결과엔 미련을 두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하다. (원래는 무척이나 연연해하는 성격이고 그래서 상처도 아주 많이 받았다. 아이들에게 200%를 쏟아냈지만 2%도 돌아오지 않은 적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민서와 지희의 말은 큰 감동을 주었다. 글쓰기의 재미를 알고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민서,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이 변하게 되어 신기하다는 지희의 이야기를 들으니 글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미친 것 같아 마음이 뿌듯, 해진다.


윗글처럼 정말 셋이 둥그렇게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를 했으면 참으로 좋으련만 각자의 사정, 각자의 스케줄로 그러한 짬은 내지 못하고 서면으로 대체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두 아이의 인터뷰 내용을 마치 실제 인터뷰한 것처럼 정리해 글을 적는데 녀석들의 음성이 막 들리는 것 같다."정말 제 글이 책에 실리는 거예요?"라며 거듭 물어보는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 진다.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10월의 나에게 5월의 추억을 안겨준 그들에게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그래서 이 글이 종이에 또렷하게 인쇄되는 순간이 온다면, 민서와 지희를 불러 두 손을 꼭 잡고 말해줄 테다.


덕분이야.

더할 나위 없었어.

고마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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