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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3. 2023

길을 걷다가

거리에서 울면서 토하는 너를

음.. 아이가 아픈지 꽤 되었다. 3월부터 아니 정확히 말하면 2월부터 아팠다. 처음에는 그저 겨울이라, 3월이라 아픈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 잦은 기침, 그리고 코 막힘, 간헐적으로 올라가는 열. 애타는 마음에 대학 병원까지 갔다 왔지만 소변 검사, 혈액 검사, 엑스레이 촬영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소변에서 백혈구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왔으나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 안심하고 유치원을 등원시킨 지 5일째.


“어머니. 00 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많이 힘들어하네요. “

퇴근길 지하철에서 확인한 유치원 선생님 메시지에 괜스레 마음이 불안했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유치원 가기 싫다고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다고 한참을 우는 것을 겨우 달래 들여보내고 출근을 한터라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름을 부르자 짐을 다 챙겨서 나온 딸아이의 모습은 너무나 어두웠다. “아직까지는 열이 없었는데 곧 열이 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인계를 해주던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용실 가서 앞머리를 자르고 나오는 길에서 그만 선잠이 깬 녀석은 울면서 구토를 하고 말았다. 한참을 참았던 소변까지 그만 줄줄줄...


본능적으로 왼손을 뻗어 아이의 토사물을 받아 버렸다. 그 사이 오줌으로 축축해진 바지를 입은 녀석은 펑펑 울며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는데 5분 거리가 5만 리는 되는 듯이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기야 여섯 살이면 감정을 섬세하게 느낄 나이인데 길 한 복판에서 토도하고 소변 실수까지 했으니 안 울 수가 없는 일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하며 엉엉 목 놓아 우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놀라고 속상했겠다. “ 정도의 말뿐.


한 손에 녀석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눈물을 닦아주며 걸어가는 마음이 무겁다. 아픈 것의 원인이야 다양하지만 일찍 출근하는 바람에 늘 유치원 1등으로 가야만 하는 아이의 상황 때문에 아픈 것 같아서다. 8시. 제일 먼저 유치원에 도착해서 갓 출근한 선생님과 아무도 없는 교실에 불을 켜고 들어가 혼자 놀이하며 보낸 시간이 벌써 2달이 넘어간다. 2달 동안 아이는 딱 3일 안 아팠다. 쉴 새 없이 항생제를 먹다 쉬었다가 다시 먹었다.


아이가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는 동안 나는 출근 시간을 겨우 맞춰 아슬아슬하게 늘 출근을 했고, 방과 후를 무려 네 개나 만들어서 수업을 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부리나케 짐을 챙겨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면서 우리 딸은 씩씩하고 강하니까 엄마의 스케줄을 잘 따라줄 거라 굳게 믿으며 불편한 마음을 애써 감추기에 바빴다.


그러다 결국, 이런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집에 와서는 온몸에 열꽃이 피고 급기야 체온이 38.9도까지 오르는 통에 급하게 해열제를 먹이니 그제야 조금씩, 조금씩 체온이 잡힌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37.5에서 38.2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잠을 자려야 잘 수가 없다.) 한숨 돌리고 나니 당황했던, 놀랐던 마음이 가라앉고 조금씩 조금씩 생각 회로가 움직이고 있다.  


어쩌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일. 아예 없었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지금 내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일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은 아이와의 삶이 아닐까?


욕심을 내려놓을 때다.

잠시 멈추고, 미안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재 정비할 때다.

능력 밖의 것을 하다 보니

주변 사람이 아프다. 이번엔 그게 아이가 된 듯하다.


다시금 중심 찾기가 필요한 때.

지금 내 추는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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