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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6. 2023

나는 좋아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추리를 합니다.



머리가 복잡하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워드로 쓰든, 손으로 쓰든 상관은 없다. 쓰는 행위에 더 의미를 둔다.

때로는 음악을 듣거나 (주로 성시경, 아이유, 빅너티, 이무진, 10cm같은 류), 그림을 그리거나 한다.

특히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1,000번을 들어도 가사가 너무 좋아 따라부르기도 한다.  

그도 안 통하면 추리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추리 퀴즈를 푸는 것을 좋아한다. 잘 하진 못하지만 그냥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정답을 맞추면 참 좋지만 그보다도 범인이 누굴까 추리하는 그 과정을 좋아한다.

나이브스 아웃은 2편보다는 1편을 더 좋아한다.

미드, 일드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것이라면 의리상 끝까지 보는 것을 좋아한다.

<좋은 날>이라는 노래, 아니 <영웅호걸>이라는 예능부터 아이유를 좋아하고 좋아하고 좋아한다.

늦은 밤 조용해진 집, 거실에서 커피 한 잔 따뜻하게 타서 마시면서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좋아한다.

10대와 20대 시절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달다구리 한 로맨스가 가득 담긴 웹툰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단, 이것은 잠들기 직전 누워서 봐야지만 그 행복함이 배가 된다.

그럴 때면 꼭 꿈에 한 번씩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해서 좋다.

국어를 맨날 보는 사람이라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제법 좋아한다. 당연히 어려운 미분, 적분 같은 것은 말고 방정식류를 좋아한다. 문제를 척척 푸는 자신을 보면서 ‘이과를 갔어야 하나?’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60도 정도의 물을 담은 컵에 홍차를 넣고 티백에서 우러나는 주황빛 홍찻물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 거의 매일 그 물결이 아름답다고 느끼며, 아주 자주 그것을 보며 행복함을 느낀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함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에세이나 소설을 즐겨하나 가끔은 사회과학 서적도 읽는다. 아주 가끔, 아니 가아아아끔.

보드게임을 좋아한다. 클루, 루미큐브, 스플랜더 등 머리를 쓰는 것도, 할리갈리 로보 77, 우노 같은 것도, 젠가도 다 좋아한다. 당연히 부르마불은 목숨을 건다.


이 수많은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머릿속이 알 수 없는 오만가지 잡념으로 가득한 오늘은 추리다. 추리로 정했다.


복잡한 머리를 잠시 두고, 한 번 슬렁슬렁 풀어볼 추리 책. 일요일에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비싼 가격에 망설이다 까짓 거 한 번쯤 이런 것도 사보자 싶어 충동적으로 지른 책이다. 이 말도 안되는 글을 발행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해볼 것이다. 과연 내가 사건현장에 있는 느낌을 얼마나 줄지 궁금하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

부디 나의 머릿속을 비워주렴.

제발.



추신: 아주 사소한 것에도 즐거움을 찾는 나를, 그런 나를 나는 참 좋아한다.

<선택의 가능성>, 비스라바 쉼보르스카 시 일부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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