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몬드>를 발견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몬드>. 독서 수행평가를 하면서 우연히 읽기 시작했다가 흠뻑 빠져버린 책입니다. 사실 2017년인가에 출간되었을 때 하도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도리어 안 봤거든요. (제가 원래 좀 그렇습니다. 남들이 다 좋아하면 안 좋아하려고 합니다. 일부러.. 하하. 꼬이기도 많이 꼬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애들이 하도 재밌다고, 쌤 이거 진짜 재밌다고 하길래 도서관에 꽂혀 있는 한 권 골라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몰입도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곤이와 윤재, 그리고 도라라는 캐릭터가 정말 살아 숨 쉬더군요. 국어 자습서에서 자주 가르치던 구절, '살아 숨 쉬는 등장인물', '생생한 장면 묘사'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있는 소설이었어요.
네. 맞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뭐 소위 인생 책이라고 하는 책 중 한 권이 되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에게 '추천' 했어요. 읽어봐, 재밌어.
그런데 말입니다.
일본에서 말이죠. 다이칸야마에 있는 츠타야 서점에서 <아몬드>를 발견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글을 8월에 저장해 놓고 10월에 쓸 줄도 몰랐습니다.) 워낙 출판 시장이 활성화되어있다는 일본, 그중에서도 유명한 츠타야 서점엔 어떤 책들이 있나 궁금했었어요.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면서도 파파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책 제목을 보며 내용을 유추하며 이른바 '책놀이'를 하던 중에 정말 반가운 표지를 발견했어요. 지금은 창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출판하고 있지만, 아몬드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무표정한 윤재의 얼굴이 가득 담긴 표지 아니겠어요?
너무 반갑더라고요.
냅다 사진 찍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첫 장을 넘겼어요. 도대체 어떻게 표현했을지, 아니 번역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역시 저는 일본어를 한 글자도 해석하진 못하지만, 제겐 파파고 이미지 번역이 있잖습니까.
역시. 번역은 (제가 감히 평할 수준은 아니지만) 괜찮아 보였습니다.
윤재의 덤덤한, 그래서 너무 슬펐던 첫 장면은 있는 그대로 묘사되고 있는 듯했거든요.
솔직히, 사 오고 싶었습니다. 한국판 <아몬드>는 사지 않았지만 일본어로 된 <아몬드>는 왠지 갖고 싶더라고요. 이상하죠?
그 마음 억누르고 사진으로만 남겨 왔습니다. 괜히 부끄러 당당하게 찍진 못했어요.
체감온도 40도를 넘던 그 츠타야 서점에서의 시간이 어느덧 "그땐 그랬지"의 추억으로 남고, 이제는 정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어버렸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제 기억도 가물가물해지려던 찰나. 오늘 문득 사진첩에서 이 사진을 발견하니 새삼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마 타지에서 발견한 소설에서 괜스레 반가움을 느꼈던 마음도 함께 찍힌 듯합니다.
요새 들어 자주 생각합니다.
우리의 힘들고 지친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힘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온다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확실하게 행복하고 평안해지기 위해서는 나를 즐겁게 해주는 아주 작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요.
6일간의 휴일을 마치고 출근한 첫날. 바쁘고 정신없고 일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 찼던 오늘,
사진 한 장이 위안을 줍니다.
맞습니다. 사실 오늘, 이 한 장이면 충분했네요.
선선한 가을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어 놓아도, 머릿속은 맑아집니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이 시각. 저는 조금씩 행복이 물듭니다.
제 글을 읽는 당신도
행복이, 평안이, 안녕이 물들어 가고 있으신지요.
어쩐지 잊히지 않는,
가을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