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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24. 2023

옷을 차려입는 이유

소소한 만족이 되더라고요.

조문을 가야 할 일이 생겼었다. 격식에 맞는 옷을 찾아 입고 싶었다. 가령, 검은 셔츠에 검은 재킷 같은.


그런데, 옷장을 열어 본 순간 좌절했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검은색, 단정한 옷이 한 벌도 없는 것이 아닌가. 찾아보면 있겠지 싶어 옷장, 수납장, 그리고 갖가지 서랍을 뒤져 보였지만 일절 보이지 않았다. 내 앞에 펄럭이는 것은 색색깔의 맨투맨, 후드집업, 청바지뿐.


사실, 6년 전 아이를 낳고 나니 모든 게 귀찮았다. 잘 시간도 없어 씻지도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상황에서 '꾸밈'은 사치였다. 원래도 가꾸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격에 (대학생 때에도 청바지, 스니커즈, 그리고 백팩만을 고수했던 나다.) 상황이 더해지자 옷이 점점 편해져 갔다. 주로 입는 청바지만 종류별로 사고 자주 입는 맨투맨만 색을 바꿔 샀다. 가끔 언니가 "너도 보이는 직업인데 옷 좀 챙겨 입어."라고 해도 한 귀로 흘렸다.


맨날 쓰는 분필 묻는 것도 싫거니와 매일같이 애들과 씨름하듯 수업하는 상황에서 치마는 사치같이 느껴졌다. 출산 후 늘어난 뱃살과 몸무게도 한몫했다. 10킬로 가까이 쪘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던 살은 어느새 차곡차곡 제 자리를 잡아 움직일 줄 몰랐다. 한 번은 유행하는 롱스커트를 사서 입었다가 튀어나온 뱃살이 너무 흉물 스러 바로 환불해 버렸다.


옷에 몸을 맞출 생각보단 몸에 옷을 맞추려고만 했다. 예쁜 옷 앞을 지나가면서 '애 키우니까'라는 말로 스스로 다독였다. 


그러다 결국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조문객으로서 갖춰 입을 옷 하나 없는 존재로 말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당장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이다 검은 원피스를 하나 사 입어 보았다. 태가 나진 않았지만 적당히 어울렸다. 다음 날 학교에 입고 가니 아이들이 즉각 반응했다. "선생님, 오늘 어디 가세요?", "선생님, 예뻐요."


실로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 아이들 말이야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 것이 맞지만 그 말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깔끔한 검은 원피스 하나로 이미지가 달라지는 기분은 꽤나 신선했다. 지금보다 더 날씬했던 그 시절, 매일 같이 예쁜 옷을 찾아 입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평소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1910년대 모던걸 느낌으로 옷을 입으면 잘 어울릴 텐데..." 

끝에 말줄임표를 굳이 붙인 것은 내가 말을 지지리도 안들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반쯤 체념한 남편은 반쯤 남아있는 미련으로 말하곤 했다. 단정하고 단아하게 입으면 분명 잘 어울릴 거라고.


이미지를 변신하고 싶었다. 


눈팅으로만 보던 옷들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몇 벌 샀다. 대부분 Free 사이즈로 구매했는데 90%는 성공적이었다. 입고 출근하면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한 선생님은 나에게 "요새 분위기 있어 보인다."라고 해주었으며, 아이들은 "선생님 오늘 착장 잘 어울려요."라고 해주었다. 그 말들은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와 차곡차곡 쌓여 갔다. 맨날 같은 스타일의 옷을 돌려 입던 내가 요새는 옷을 고르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러다 말겠거니 생각한 남편도 아침마다 코디에 열을 올리는 나를 보며 "잘 어울린다."라고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요새 예쁜 옷들은 전부 사이즈가 타이트 해 식사량을 조절해 가며 체중을 관리할 정도로 요새는 옷에 진심이다. 평소 같았으면 밥 두 공기는 너끈했을 내가 한 달 정도 탄수화물을 줄이니 2~3kg 정도를 감량했다.


그래서 요새는 아침이 즐겁다. 오늘 뭐 입지?라는 질문이 '오늘 뭐 먹지?' 만큼이나 중요하다.

정말 하나도 없던 스커트 두 개, 원피스 하나, 블라우스 하나... 소소한 아이템들을 사 모으면서 내일의 코디를 상상한다. 심지어 여름에 샀다가 허벅지부터 들어가지 않던 와이드 팬츠가 예쁘게 맞으면서 기쁨은 배가 됐다. 


여태까지 옷을 차려입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한 편 더 보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라고, 옷 따위에 연연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세뇌시켰다.


그런데 '옷'이 또 다른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나를 즐겁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그 정도의 사치는 꼭 필요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글을 마치는 지금, 

내일 입을 옷을 궁리한다.

나는 내일도,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 

나를 단장하며 행복해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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