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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Nov 27. 2023

애매한 인간

뭐 하나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다. 공부도 고만고만, 성격도 고만고만, 외모도 고만고만한데 평균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처음엔 내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 생각하며 내가 무언가를 바꿔나가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다. 난 그저 내 앞가림을 제대로 하기에도 버거운 사람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확실하게 무섭거나 확실하게 친절해야 하는데 난 적당히 애매한 그 어딘가에 서있다. 무서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말 친절하지도 않다. 굳이 따지자면 친절한 것인데 사실 아이들에게 대하는 것 중 일부분은 친절하기 위해 친절한 경우가 있다. 내 일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된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땐 ‘EBS 최고의 교사‘에 출연하거나 EBS 강사가 되어 이름을 한 번 정도는 날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내 정도면 잘하지 않나?‘라는 건방진 생각을 자주 했던 듯하다. 나를 따르던 아이들이 나의 ’ 젊음’에 이끌린 것도 모르고 오롯이 내 ‘능력’이 출중해서 좋은 평을 받는다 생각했다. “담임해 주세요.”라는 말에 취해 그렇게 둥둥 떠나디며 살았다.


그런데 요새는 다르다.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멈춰 있는데 아이들은 변했고, 그 변화 속에 나는 어쩐지 확실히 잘난 사람보다는 확실히 애매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나는 내 딸에게 학생들에게 화내듯 화내고, 내 학생들에게 딸에게 말하듯 가끔은 가식을 섞어 대한다. 엄마이자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중 가장 속상한 것은 내가 가르치는 일에 큰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다. 학력이고 기초부진이 고를 떠나, 내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영 꽝, 이다. 왜 이렇게 ‘꽝’이라고 확정 지어 말하느냐면 나는 내가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한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혹은 자습서를 참고하여 시험에 나올만한 것들을 공부해 가르쳤다. 깊이 있는 생각이 필요한 것들은 피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단편적인 지식들만 가르치고 있다.


종이 쳐 교실에 들어간 순간부터 다시 종이 쳐 교실을 나오는 순간까지 나는 내가 가르치는 일에 재능이 없음을 늘 실감하고 나온다. 나는 자주 화를 내며, 실망했다가 자주 기대를 하고 희망에 찬다. 나의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나를 통해 무엇을 배울까 생각하면 답이 나오질 않는다. 배우는 것이 있기는 할까, 싶다가 가만 보면 내가 뭘 가르치려고 하는지가 흐릿해 고개를 숙이고 만다. 쉬는 시간 10분은 나의 도피처다.


그래서 요새 나는 어쩐지 많이 우울하다. 나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퇴근 후 딸아이와의 시간인데 아직은 너무나도 어린 녀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순 없거니와 “커서 절대 선생님은 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녀석에게 선생님의 그림자만 너무 보여주는 것 같아 선뜻 입이 안 떨어진다.


대화 중에 내 애매함이 녀석에게 묻어 번질까 싶어 함구한다.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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