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눈물이 흐를 줄 알았다면
애초에 보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주연 배우에게도 호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8년도에 방영한 드라마를 2023년도에 보게 된 것도 그 이유다. 작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분명 뻔한 로맨스라고 확신했고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확신했기에 6년 간,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
최근에 '무빙'을 무척이나 재밌게 보고 나서, 펑펑 울면서 보고 나서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갔다. 흔한 로맨스, 혹은 말도 안 되는 복수극에 질려 한 동안 거리를 두던 드라마였는데, '우영우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는 와중에도 일절 보지 않던 드라마였는데 호평을 받았다 하니, 한 번쯤은 눈 딱 감고 봐 보자,는 생각이 일었다.
아이를 재우고 시작한 것이 벌써 2주가 넘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대사가 값지다.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마는 게 아까워 곱씹고 곱씹을 정도로, 대사 덕분에 인물이 다시금 보일 정도로 대사가 빛이 난다. 김은숙 작가의 대사야 워낙 유명하지만 <미스터 선샤인>은 유독 의미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은유와 비유가, 대조와 도치가 적절히 혼합된 대사는 스쳐 지나가는 듯 남아있고, 남아있는 듯 스쳐 지나간다. 작가가 흔히 쓰는 역설과 반어, 끊어뜨리기 또한 작품을 매력 있게 만들어 준다.
화면 또한 예술. 필름을 낀 것 같은 뽀얀 영상미는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장소는 어찌나 공들여 섭외했는지 진짜 가마터가 있을 것 같고, 주막이 있을 것 같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배가 있을 것만 같다. 불란서 제빵소에 들러 알사탕 하나 먹고 싶고, 화월루에 가면 구동매가 일어를 유창하게 하며 내 앞을 지나갈 것 같다. 드라마이니, 그러니까 상상과 허구와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장르이다 보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100%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느낀다. 재미라는 표현은 투박하고, 그러니까 드라마로 희로애락을 느낀다. 슬펐다가 기뻤다가, 화가 났다가 즐거웠다가 한다. 구한말의 슬픈 역사를 이토록 시리게 표현한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퓨전 사극도 정통 사극도 취향이 아닌 내게 어쩌면 그 중간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난, 그 중간 어딘가에서 마냥 넋을 놓고 보는 중이고.
새삼 이 시간에 서재에 꽂혀있는 역사서를 한 권 뽑아 읽고 싶다. 수십 년 전 우리가 기록해 남아있는, 삶이 바빠 잊고 지낸, 그 시절의 역사를 눈으로 보며 곱씹고 싶다. 오늘 내가 흘린 눈물 보다 더 많은 그것이 흘렀을 그 시절의 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싶다.
눈이 온다.
겨울이다.
그 시절도, 차디찬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