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Jan 10. 2024

업무 분장, 그리고 방학

드디어 방학입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늦은 방학을 했습니다. 12월을 넘기고 1월에 다 되어서야 종업과 졸업을 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며 아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맡았던 1학년 아이들은 3월보다 아주 많이, 부쩍 성장했더라고요. 그 녀석들을 가르치는 나는 얼마나 성장했나 돌아봅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한 해를 보냈다고 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제가 비담임이어서겠지요. (모든 담임 선생님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1학년을 2년째 가르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6학년에서 1학년으로 올라온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모른다는 것을요. 초등학교에서야 고학년이지만 중학교에서는 이제 겨우 첫 발을 내디딘 아이들을 많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말하는 법, 행동하는 법 등을 꼼꼼하게, 꾸준히 가르쳐 주어야, 그래야 겨우 조금이나마 행동이 변하더라고요. 올 1학년 아이들은 꽤 예쁘고 좋았습니다. 처음에야 낯을 가려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주 조금 자랑을 하자면, 비담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종업하는 날, 편지를 무려 두 통이나 받았습니다. 여학생 한 통, 남학생 한 통. 다른 짐은 다 두고 편지 두 통만 가방에 고이 넣어 가져 왔습니다.


코로나를 지난 세대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휘력 부족하고, 문해력도 부족합니다. 그래도 애들이 참 착했습니다. 저, 수업 시간에 종이비행기도 맞아 보고요. (상상 못 하시겠죠^^?) 수업하다가 갑자기 말없이 화장실로 도망가 버린 아이도 있었고, 수업 중에 난입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꽤 착했습니다. 국어선생님, 국어선생님, 하며 말을 걸어 주었고, 지도하면 들어주었습니다. 어딜 가나 방황하는 녀석들은 있기 마련인데 이 아이들은 제 말이 통하는 아이들이더라고요. 그 이전 학년 아이들은, 제 말이 흐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말하면 흩어지는 아이들. 그래서 참, 힘들었습니다.


비담임을 했기에 24년에는 무언가 부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엄청 막중한 부장 제안을 받고 놀랐습니다. 학교의 중책 중 하나인 연구부장(혁신부장) 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일 하는 것을 좋아하고, 혁신, 수업 개선 등에 의지가 있는 저지만 많은 분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스톱, 했던 것은 학교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가 제 곁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 그 둘을 가장 먼저 생각하기로 하니 연구부장은 지금 이 순간 맞는 옷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제안은 너무나 감사했지만, 끝내 제안을 거절하고 돌아 나오는 길, 마음이 조금 씁쓸했습니다. 어쩌면 기회였을지도 모르는 것을 제가 놓은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 새벽엔 3시 30분부터 두 시간 정도 잠을 설쳤습니다. 연구부장을 거절하고 제가 선택한 것은 학년 부장입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지망은 2학년 부장입니다. 2023년을 함께한 녀석들을 데리고 올라가 보려고 하는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시간을 쓰면서, 아침에 1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육아 독립군으로서 과연 학년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잘할 수 있으려나요? 그럴 수 있을까요? 아니, 사실 그전에 먼저 학년 부장이 될 수나 있을까요? 한 치 앞도 모릅니다. 예측된 상황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주 약간 미련이 남습니다. 그냥, 연구부장 할 걸 그랬나, 하고요.


무튼, 2023학년도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종업을 했고, 졸업을 했습니다.

1년 간 정들었던 아이들에게 마지막 국어 수업을 알리고, 내년에도 웃으며 인사하자고 말을 마치고 수업을 끝냈습니다. 두 달 후 우리는 강당에서 만나겠지만 그전에 꼭 마무리 인사는 해야지, 싶어서요.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 담임도 아닌 주제에 시원, 섭섭합니다. 사람 마음이 참 웃기죠? 몇 달 전에는 힘들어 죽겠다고 쓴 접니다.


업무 분장으로 한참 고민을 하던 중에 “학년 아이들 중에 거칠고 힘든 아이들을 지도하는 게 부담이 된다. 그 아이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겁이 난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참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부장님께서 해주신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에겐 뭔가 있어. 다정다감하면서도 아이들을 잘 챙기고, 마음을 알아주는 그 어떤 것. 아무리 거칠고 힘든 아이라도 그 마음을, 그 곁을 내어주는 그 어떤 것 말이야. 그게 있어. 그게 선생님의 가장 큰 장점이야.”


단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아이들 눈에는 한없이 착해 보이고, (과연 그럴까요^^?) 화도 잘 내지 못하며, 엄하지 못하거든요. 항상 혼내고 집에 와서 한동안 속상해하거든요. 소위 말하는 거친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도 미숙해서 늘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년 부장도 엄청 고사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장점이라고 해주시니, 감동이었습니다. 맞아요. 사실 저,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가 진심을 나누는 과정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 교사가 아직도 좋거든요.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아이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듣고, 거칠고 힘든 아이에게 다가가 마음을 달래주는 그 일이, 보람차게 느껴집니다.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다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그렇죠? 세상엔 호랑이 선생님도 필요하지만 저처럼 들어주는 선생님도 분명, 필요하잖아요.^^


조금, 자신감이 생깁니다.

아이들 데리고 끌고 밀고 당기면서 한 해 잘 살아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럼요. 아이들은 아무리 거칠고 힘들어도 그래도, 아이들이잖아요.


아직 뭐,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학년 부장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을 다 잡아 봅니다. 할 수 있다고요. 분명히.


두서없는 글 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밀린 책을 반납하고, 나의 사랑둥이를 데리러 가야 합니다.

일을 사랑하는 엄마가 일보다 더 사랑하는 딸을 만나러 갑니다.


눈도 그치고, 따뜻하고, 마음 한편이 편안합니다.

방학입니다.


그동안 모두들, 학교의 모두들,

그리고 1년 간 마음속에 방 하나 만들고

생각, 느낌 고이고이 저장해 둔 나, 스스로도,

너무 고생 많았습니다.


푹 쉬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사는 이야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