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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an 16. 2024

한 글자씩 눌러 담은 마음

편지 쓰기를 좋아합니다.


저에게는 아주 촌스러운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빨라지고, 챗GPT가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고 하더라고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편지, 그것도 예쁜 종이에 꾹 눌러 담은 마음을 글로 옮기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성스럽게 한 글자씩, 한 글자씩 조심스레 적어 내려간 글은,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준다고 믿어요.


편지 쓰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가요, 말로는 쉬운 것들이 글로는 한 없이 어려워지지 않습니까. 어떻게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글씨가 이상하지는 않을지, 혹여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리지는 않을지, 그래서 한 없이 부족한 나를 들키지는 않을지 고민하게 되는 것, 그게 바로 편지 쓰기가 아닌가 싶어요.


글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던 저는, 어려서부터 편지 쓰기를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제가 중학생이던 시절엔 편지 쓰기가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는데요. 아주 작은 쪽지에다가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주고 답장을 받는 것이 하나의 놀이였습니다. 열넷의 여중생에겐 아주 큰 기쁨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도 친정에 가면 초등학교 때부터 모아둔 편지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년도, 30년도 더 된 종이의 빛은 바래도 그 안에 담긴 기억은 아직 생생합니다.


그래서 전,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곤 합니다. 카드, 엽서, 편지지 가릴 것 없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정성을 다하여 생각을 적어 보냅니다. 나이가 들어 직장을 갖고서 가장 많이 편지를 썼던 대상은 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생일이 되면 그 생일에 맞춰 꼭 편지를 적어 주었습니다. 태어나서 축하해, 오늘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하루를 맞이하길 바라, 와 같은 인사와 함께 평소 그 아이를 관찰하며 느꼈던 감정을 진솔하게 적곤 했지요.


워낙 글쓰기를 좋아해서 한 번 쓰면 두 장은 끄떡없었거든요. 말 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 글로 생각을 전하겠다 마음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가득 담아 봉투에 넣고 받을 사람의 이름을 적어 밀봉합니다. 그때가 가장 설렙니다. 상대에게 전하기 직전의 그 마음, 두근거림, 떨림 같은 마음이 가득한 순간을 사랑하는가 봅니다. 아마도. 이튿날 스리슬쩍 불러내어 편지를 건네면 열이면 열, 놀라고 당황해합니다. 왜요? 갑자기? 하는 마음이 전해질 때, 그냥, 생각이 나서,라고 얼버무리고 교무실로 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전한 후에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한층 부드러워져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만) 녀석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한결 누그러져 있다는 것을 느끼면 수업이든, 상담이든 한결 쉬워집니다. 10년 넘게 켜켜이 쌓인 아이의 삶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하고 욕심을 내어 봅니다.


마음을 나누는 소통. 그 소통을 한 지 10년이 넘어가네요.


최근엔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친한 부장님, 존경하는 부장님, 그리고 항상 아이들을 상담하느라 애쓰는, 상담 선생님에게 마음을 전해 보았습니다. 아, 그리고 업무 분장으로 정말 많은 고민을 안고 계실 교감선생님께도요. 업무 메시지에만 익숙해진 그분들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을 건네면 대부분 무척 좋아하십니다.


그때마다 생각합니다. 행복한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가르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선생님들의 마음을, 1년을 보내며 갈라질 대로 갈라진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일이 아닐까 하고요. 좋은 곳에서의 회식이 아니라, 굳이 시험이 끝난 날, 등산을 하며 친목을 다지는 것이 아니라,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참 애쓰셨다고, 그래서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해주는 일이 아닐까, 하고요.  


그렇게 조금씩 마음에 틈이 생기고, 그 틈 사이로 울림이 생기면 안팎으로 너무 힘든 학교도 조금씩 편안해지지 않을까, 하고요.

아주 거창한 일의 시작은 극히 사소한 일에서부터 온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요?


무튼, 그래서 전 올해도 편지를 쓸 작정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넓혀서 저를 만난, 소중한 사람들에게 천천히, 조금씩, 그렇게 적어볼 생각입니다.


촌스러운 것들이 가끔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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