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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an 15. 2024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계획합니다.

아이가 유치원으로 가고 사라진 자리엔 어지러히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만이 남아있습니다. 갑자기 추운 날씨에 놀라 콧물이 맺힌 채로 집에 겨우 돌아온 저는, 그 옷가지들을 모아 정리하곤 청소를 마무리합니다. 엄마나 언니처럼 손끝이 야무진 편은 아닙니다만, 한 겨울에 청소를 하고 안 하고, 환기를 하고 안 하고는 꽤나 큰 차이가 되어 돌아옵니다. 집 안 곳곳에 쌓여있는 먼지들이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날 기회를 줍니다. 한결 상쾌해진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으면, 그제야 책상에 앉아 하루를 계획합니다.


무언가를 할 때, 큰 틀을 잡아 두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생각을 바꾸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항상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둡니다. 최근에 글을 쓴다고도 했고, 방학 때에는 밀린 연수도 좀 들을 참입니다. 마침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해외여행도 앞두고 있습니다. 어쩐지 몸보다 마음이 더 분주합니다. 당장 얼마 남지 않은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계획이 필요합니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에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커피입니다. 여러 번 글에서 밝힌 것과 같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주 따뜻한 바닐라 라테이지만(스타벅스보다는 학교 앞 컴포즈 커피의 바닐라 라테가 입맛에 맞습니다. 동네 아주 유명한 커피숍의 커피는 단연 최고입니다.) 요새 저는 드립 커피에 푹, 빠져있습니다. 먹기 시작한 것은 꽤 됐는데 정말 좋아진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에스프레소에 길들여진 입맛이 바뀌는 게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요새는, 드립 커피만 마십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만든 커피는, 어쩐지 맛없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아! 물론, 드립세트를 사서 직접 원두를 갈아먹는 것은 아니고 맛 좋은 드립백을 사서 천천히, 커피를 내려 마시는 정도인데요. 그 자체로도 무척 힐링이 됩니다. 일리 머신에서 느낄 없는 여유, 즐거움이 있습니다. 홍차로 채울 없는 묘한 맛이, 있습니다. 드립백을 엄청 좋은 것을 사서 먹느냐, 그것은 또 아닙니다. 적당한 산미가 느껴지는 것이 좋아 예가체프 원두를 기반으로 한 드립백을 사서 먹습니다. 1kg 커피, 아니면 쿠팡과 콜라보한 McNulty Coffee 드립백을 애용합니다. 값은 비싸지 않은데 먹을만합니다. 


드립백을 열었을 때 퍼지는 커피 향, 그리고 조심스레 물을 부어가며 커피를 내릴 때의 그 구수함은 아무리 빡빡한 아침이어도, 아무리 븍한 일이어도 다 괜찮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학기 말에 드립 커피 많이 내려 먹었습니다. 수업에 들어갈 때에도 아주 가~~ 끔 가지고 들어가면 아이들이 즉각 반응했습니다. 향기 좋아요, 먹어 보고 싶어요,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지면 저는 짐짓,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오늘 할 일이 많습니다. 여행 일정을 짜야하고요. 미루고 미루던 여행자 보험도 선택해서 들어야 합니다. (뭐든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일을 미루곤 하죠...) 그리고 옷도 정리하고, 글도 써야 합니다. 여러 가지 할 일 속에 틈틈이 커피를 내려봅니다.


역시, 좋은 향과 함께 하는 일은 

힘들지만은 않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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