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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14. 2021

욕심은 많은데 지질하기까지 한 엄마입니다.

천연 오가닉 코튼 강아지 인형의 수난시대 


'18년생 개띠 아가를 위한 강아지 인형'


배송비 포함 3만 원 남짓. 비쌌지만 눈 딱 감고 질러버렸다. 그리곤 14살 가정 시간 이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바느질을 시작했다. “아가야~ 엄마가 너를 위해 만드는 인형이야.”라는 오글거리는 멘트와 함께.


몇 달 후, ‘아가’를 위해 만든 DIY 인형은 짐 정리 박스에 담기게 되는데……


그러니까 오늘의 이야기는 3년 전 태어난 우리 딸의 첫 애착 인형(?) 이야기이자 나의 실패담이다.




3년 전, 침대 위에서 꼬물꼬물 거리는 아기 옆에 손수 만든 애착 인형을 눕혀 주었다. 캬- 엄마가 만든 인형을 품에 안고 잠드는 신생아라니. 너무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리라!’는 나의 부푼 꿈은 몇 초도 안 되어 실패했다. 아직 시선처리도 되지 않아 초점 북도 겨우 보는 아기에게 웬 강아지 인형이란 말인가? 인형이 걸리적거렸는지 자꾸 울어대는 통에 결국 침대에서 아예 치워버렸다.


‘집착’ 하나는 끝내주는 난 아기가 커갈 때마다 수시로 인형을 들이댔다. 6개월 즈음부터  “어머나~ 여기 강아지가 있네. 멍멍! 안녕! 난 멍멍이야.”라며 놀아주었지만 딸의 표정은 냉랭했다. ‘엄마… 이유식은 만들었어?’, '그럴 시간에 분유 온도 좀 잘 맞춰줘요.' 하는 표정. 돌도 안 지난 핏덩이 앞에서 억지 역할 놀이를 하는 나를 본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가곤 했다.


이후 나의 집요한 시도가 이어졌지만 인형은 버림받았다. 아… 천연 오가닉 코튼에, 부드러운 파스텔톤 색감, 그리고 엄마의 따뜻한 손놀림이 가미된 이 아름다운 30,000원짜리 인형을 왜! 안 갖고 노느냔 말이다! 아주 많이 서운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임신하고 울렁거릴 때 차라리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잠이나 잘 걸. 에이, 그 돈으로 그냥 맛있는 거나 사 먹을 걸,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결국 인형은 탄생한 지 1년도 안되어 정리함에 갇혀버렸다.


대신 딸은 값싼 가제 손수건을 그렇게 찾아댔다. 6개월 무렵부터 가제 손수건을 쥐고 잠들었고, 쪽쪽이(공갈 젖꼭지)를 끊던 18개월 즈음엔 아예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으며 잠들었다. 어느 정도냐면 달리는 차 안에서 보통의 아기들은 심심하거나 지루하거나 짜증 나거나 하는 갖가지 이유로 미친 듯이 울어재끼는 데 딸은 가제 손수건을 양손에 쥐어주면 꼭 붙잡고 잠들었다. 그리고 27개월인 지금도 잠잘 때 가제 손수건을 달라고 징얼거린다.  


"뽀로로 인형 줄까? 크롱은?" 해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짜증 내다가 “가제 손수건 줄까?” 하면 신나서 팔을 위아래로 크게 벌리며 웃는다. 그러면 나는 하도 삶고 빨아서 너덜너덜해진 가제 손수건 수십 장을 품에 안겨준다. 딸은 마냥 좋아하면서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개구리 자세를 취한다. 잠을 자겠다는 표현인 셈이다. 그리고 5분 정도 흐르면 깊이 잠들어버리는 것이다.   


한 번은 가제 손수건을 엮어 꼬리잡기 놀이를 해주니 까르르 넘어간다. 목욕하면서 손수건에 공기를 넣어 풍선처럼 묶어주니 신기해서 난리가 난다. 자다 일어났을 때에는 더 하다. 꼬질꼬질, 꾸깃꾸깃해진 손수건 수십 장을 품에 안고는 좋다고 웃는다. 그뿐만 아니다. 약 타러 간 약국에서 낯선 어른들이 무서울 때, 유모차에서 잠이 올 때, 울 딸은 언제나 한 손에 가제 손수건을 쥐어주면 안정을 취하곤 한다.   


그림도 흐려지고, 군데군데 실밥도 튀어나온 게 보기 싫어 낮잠 잘 때 슬쩍 버리고 싶은데 후폭풍이 두렵다. 언젠가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때, 진지하고 슬픈 얼굴로 "엄마가 그때 손수건 버려서 나 속상했어."라고 말할 것만 같아 겁이 난다. 그러면 뭐라고 말하지? “네가 엄마가 만들어준 '멈머'(강아지 인형)는 안 좋아해서 그랬다! 왜!”라고 말하기엔 너무 지질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 집엔 아직도 너덜너덜한 가제 손수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가만히 우리 딸을 보면 아기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을 탐구한단 말이 찰떡같이 들어맞는다. 딸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세상을 경험해보는 중인 것 같다. 어떤 것은 놀라고, 어떤 것은 무섭고, 어떤 것은 좋은 감정을 느끼면서 그 경험이 쌓여 소위 말하는 자신만의 ‘애착’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 딸은 내가 옆에 놓아준 인형보다도 늘 곁에 있던 가제 손수건에 얼굴을 비비면서 안정감을 느꼈을 것이다. 얇고 보드라운 손수건을 만지면서 덤으로 편안한 마음도 얻었을 테지. 그렇게 손수건과 딸의 일상이 쌓이고 쌓여, ‘가제 손수건 = 행복’이라는 공식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우리 딸에게 ‘애착 인형’을 들이대며 좋아하길 바란 것은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지 모르겠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기가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을 내가 억지로 만들어주려고 했으니 말이다. 부모의 욕심에 남들과 같은 혹은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미리 준비해놓고 그것에 정을 붙이길 바라는 것은 진짜 애착형성이 아니라 어쩌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요새 인기 많은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고 지금부터 좋아해 봐!라고 하면, 좋아할 수 없듯이.


그래서 욕심 많은 엄마는, 오늘도 반성한다. 남들이 다 샀다는 인형을 사고, 남들이 입는다는 옷을 입히고, 남들이 다 본다는 책 사주며 왜 좋아하지 않느냐며 눈으로 화를 낸 것을 반성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냥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맡겨보자고. 조금 느리더라도 울 딸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상은 분명히 행복할 거니까.




추신 1 : 그래서 그 '18년 개띠 아가를 위한 천연 오가닉 코튼 DIY 인형'은 어떻게 됐냐고? 몇 주전 못쓰는 짐들은 정리할까 싶어 정리함을 쏟아보니 그 안에 인형이 떡-하니 있었다. '아줌마. 저 아직 여기 있어요!' 하는데 괜히 짠했다. 딸에게 보여주며, "이건 멍멍이야~ 멍멍!" 하며 강아지 흉내를 내니, 그때부터 인형은 '멈머'가 되었다. 드디어, 울 딸에게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긴 된 거다.


추신 2 : 낮잠을 재우려는데 딸이 ‘멈머’를 찾는다. 혹시나 해서 옆에 슬쩍 두니, 짜증을 부린다. 가제 손수건을 대령하며 생각한다.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아. 지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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