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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19. 2021

잠시 쉼표를, 찍어본다.

브런치 초보자의 부끄러운 고백 

“쌤... 제 글이 왜 B인지 궁금해요. 친구는 A던데...” 


수행평가 점수를 공개한 날, 이의제기를 위해 찾아오는 학생이 한 명씩은 꼭 있었다. 그러면 나는 녀석의 답안지를 들고선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분량을 채운 건 애썼네, 그런데 이건 주장과 근거가 타당하지 않고,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이건 맞춤법도 어긋났네? 하면서. 벌게진 얼굴로 자신의 글을 보고 있는 녀석에게 글을 읽어보면 이 사람이 정말 깊게 생각하고 글을 썼는지, 아니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고 썼는지 알 수 있다고, 앞으로 솔직 담백하게 글을 써보라고 잔소리까지 덧붙여 보내곤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솔직 담백'과는 거리가 멀다.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일상을 모두 소재로 생각하고 글로 적어보고, 그러다 보면 이것도 쓰고 싶고, 저것도 넣고 싶어서 다 문장으로 옮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욕심쟁이'. 그렇게 종일 안달복달하면서 3시간 동안 쓰고 고치고 다듬어서 완성한 글을 남편에게 보여주면, 반쯤 읽곤 고개를 갸우뚱한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 

“그게... 어쩌고저쩌고 한 내 모습...?”

“… 너, 조회수에 집착 좀 하지 마.” 


한참 생각하던 남편이 정곡을 찔렀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일주일도 안 되어 미친 듯이 올라가는 조회수와 늘어나는 “라이킷”을 겪은 적이 있다. 난 그런 거 연연하지 않을래,라고 다짐한 것이 무색하듯 매일같이 브런치를 검색하고 방문자 통계를 보다 보니 욕심이 났다. 브런치 스타일의 글, 주목받는 제목, 그리고 힘이 들어간 문장. 모든 요건을 갖춰서 써보면 다시 한번 그 짜릿함을 느끼지 않을까? 란 생각에 자꾸 글을 꾸미려고 했다. 


하지만 내 글은 번번이 퇴짜 맞았다. (나는 글을 업로드하기 전에 꼭 남편에게 보여준다.) 이번 글은 괜찮지 않냐고 물으면, “네가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라는 남편의 말에 대답을 못했다. 쓴 내용의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눈에 띄고 싶고, 좀 더 많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 약간 과장을 했기 때문에 온전히 솔직한 글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14일에 마지막 글을 올린 후, 3편의 글을 완성했지만 어느 하나 업로드할 수 없었다. ‘내 글 좀 좋아해 줘’란 마음으로 온 갖가지 내용을 다 때려 넣어 A4용지 3페이지 가득 써버린 글은 아무도 읽어줄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글 한 편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니 책상엔 연필로 죽죽 그어진 내 글들이 수북이 쌓였다. 속상했다. 하나씩 정리하는데 문득 수행평가 점수가 이상하다며 찾아온 녀석이 생각났다. 녀석도 빨간펜 가득한 답지를 보고 이런 마음 들었을까? 


순간, B를 받아 속상한 그 글 안엔 사실 채점하는 내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서 녀석은 ‘짧고 명료하게 써라’, ‘핵심만 잘 표현해도 된다’는 말에도 분량을 초과하는 글을 써내고, 괜스레 자극적인 내용을 넣어보기도 했구나. 수많은 글에서 조금 더 돋보이고 싶어서. 좋은 점수를 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기를 원했던 것처럼.  


사실 그동안 몇 날 며칠을 고생해 글을 올려도, 정작 내 글의 조회수는 낮았다. 자연스레 자존심이 상했던 나는  좀 더 열심히 노력해보자고 다짐하는 대신 ‘지질함’을 택했다. 괜히, 주목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질투한 것이다. 저, 글은 왜 다들 많이 읽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흥! 제목만 너무 잘 지었잖아! 하면서.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처음 시작할 때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고, 자꾸 꾀를 부리고 있었다. 내 삶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글쓰기를 하면서 말이다. 이제 제자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내게 돌려주어야 할 때.   


“글을 읽어보면 이 사람이 정말 깊게 생각하고 글을 썼는지, 아니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고 썼는지 알 수 있어. 앞으로 솔직 담백하게 글을 써봐.” 


이제 욕심 조금 내려놓고 다시 본질에 집중하자. 글을 쓰는 것은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시작한 브런치, 과열되었던 나의 ‘집착’을 잠시 멈추고 조금씩 천천히 쓰자고, 쉼표를 찍어본다. 진심이 담긴 글은 분명 언젠간 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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