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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05. 2024

브레이크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잠시 브레이크를,

며칠, 아니 몇 주간 글을 쓰지 않았다. 매번 반복되는 패턴이긴 한데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았고 무엇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해주던 글쓰기 피드백 거리가 있을 때에는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으로 밀고 가던 내가,

그 일이 끝나고 나자 허무할 만큼 빠르게 느슨해져 갔다.

더군다나 4월 중순부터 말일까지 수업 공개를 자처했다. 신경 안 썼다고 하지만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적당히 망했고, 적당히 성공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촬영해 주신 수업 영상은,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생리증후군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찾아왔다. 시작 3일 전에 시작된 두통은, 늘 먹던 급성 편두통 약을 비웃기라도 하듯

생리 기간 내내 이어지다가 끝나고도 2일 동안 나를 괴롭혔다. 마침 어제, 오늘은 정점이었다.


뭘 먹어도 토할 것 같았다. 입덧보다도 심했다. 적어도 입덧은, 구역질 끝에 변기에 떨어지는 토사물 따위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조금 심했다. 자꾸 속이 더부룩했고 먹은 것들의 일부를 다시금 확인해야 했다. 정말 ‘어린이날’이 아니라면 나는- 침대에 누워 빌빌 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날이었고, 아이는 들떠있었다. 마침 남편은 아주 심한 감기에 걸려 꼼짝도 못 하는 상황.

1년에 딱 한 번 있는 어린이날을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날 수는 없어 있는 힘없는 힘을 끌어보아 놀아 주었다.

4일은 키즈카페를, 5일은 박물관을 갔다. 버스 타고, 걸어서 뚜벅뚜벅 걸어간 곳에서 두어 시간을 놀고 집에 오면 그대로 녹초가 됐다.

어제는 커피도 받지가 않아서 맹물로 속을 채웠더니 막판엔 졸려 죽는 줄 알았다. 오늘은, 지금은 조금 낫다.


어린이날 특수를 실컷 누린 녀석은

쿠로미 페이스 페인팅이 지워졌다 펑펑 울기도 하고,

엄마가 했던 말 계속해서 짜증 난다고도 하고,

그래도 엄마랑 놀고 싶다고 하다가

조금 전에 잠이 들었다.


나는, 원래라면 집으로 끌고 온 일도 하고 (학운위 안건 올리기, 품의하기 등등)

책도 읽고 해야 하는데, 그건 다 집어치우고 머리를 비우고 싶어 요새 보기 시작한 웹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다.

1,000원, 2,000원씩 야금야금 결제하다가 며칠 전에 짜증 나서(?) 아예 30,000원을 질러버렸다.

요새 커피도 안 사 먹고(드립백 먹거나 원두 갈아 내려 마신다), 군것질은 원래 안 하고, 사람들도 안 만나고, 오로지

집-회사-유치원-집인데 1,000원 결제에 벌벌 떠는 게 짜증 나서.

그냥 확- 질러버리니 쿠키가 300개. 그나마도 지금은 이것저것 미리 봐서 230개쯤 되려나?


무튼, 그렇다.


은수의 이야기도 마무리 짓고, 내가 만난 아이들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은 지금 내 머릿속에 현생(학년부장)의 일이 너무 가득하기 때문이다.

비워내려고 해도 비워지지가 않는다. 쓸데없는 책임감은 이렇게 휴일까지 나를 일로 몰아치게 만든다.


오늘은 두통에 복통에 구토에 시달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좀 쉬라고, 너 좀 누워 있으라고, 이렇게 아픈가?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두어 달 힘들게 일하면 아프고,

그리고 일주일 쉬면 또 괜찮고? 할 수가 있는지.


신기하게도 이번엔 3,4일 정도를 아무 생각 안 하고 쉬니까 조금 나아지고

지금은 정말 말짱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일 중독인 나는, 이렇게 몸이 괜찮아지자마자

또 뭔가를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즐기나? 내 몸은 힘든 상황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그 상황을 즐기나?


학기 중 바쁠 때에는 계속 쉬고 싶다고 하다가 막상 방학이 되면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나는

어쩌면 진짜 워커홀릭일지도? 그런데 육아는 왜 워커홀릭이 안 되는지?


의식의 흐름으로 써 내려가는 이 글의 요지는,

지금 나에게는 조금의 브레이크가 필요하고

그 브레이크 중 일부로 웹소설을 읽고 있으며

로맨스로 넘치는 그 소설을 읽으면

괜스레 행복해진다는 것과

나도 그 작가님처럼 그런 가슴 설레는 글을 써서

퇴사를 꿈꿔보고 싶다는

그런 얄팍한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읽느냐,

<이섭의 연애>라는 웹소설인데, 입문은 웹툰으로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아주 까다로운 만화책 그림체 심미안이 있는 나에게

그림작가의 그림이 아주 맞춤형이었고,

일머리 있고 능력 있으며 완벽한 실력파 여주는 내 취향! (난 어리바리 신데렐라 스타일의 여주를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몰입됐는데, 본격 격정 로맨스에 심장 뛰는 아줌마는 그만,

자기 직전에 웹소설(원작)로 가버리게 된 것.


동짓달 기나긴 밤 허리를 베어내어

요 며칠 새벽에 붙여 만든 길고 긴 시간 끝에

웹소설 완결은 봤고-

이제 그게 어떻게 웹툰화되는지만 기다리면 되는데도

설레고 설레어 정주행을 하고 있다, 이 말씀이다.


그래서 딸이 곯아떨어지고

몸상태가 많이 좋아진 남편과

수다를 떨며 보내자고 한 이 시간에

난 부득불 브런치를 켜

요새 내가 푹 빠진 <이섭의 연애>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는 것이다.

물론,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그래도 로맨스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 봐보세요. ^^;)


깊어 가는 밤, 가만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소설, 이야기, 그래 소설은 아주 먼 옛날 소설은,

구전되어 전해지던 이야기에 살이 붙고 붙어 만들어진 소설들은

여인들에게 먼저 인기가 있었다지.

사랑이야기, 전쟁이야기, 영웅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은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한평생 집에만 갇혀 지내야 했던 여인들의 마음을

단숨에 홀려 놓았다지.

아이도 재우고 모두가 잠든 그 밤에 그 시절에 그 옛날의 여인들은

마음 설레는 이야기를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듣고 상상했겠지.


현실과 다른 상상 속 주인공의 삶을 그리며

어제를, 오늘을, 내일을 버텼겠지.


지금 내가 그러한 것처럼.

그러니까 소설은, 정말로 대단한 것 아닌지.

사람 마음 움직이는 것도,

사람 마음 다 잡는 것도,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도,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도

결국 소설이 아닌지.



- 하는 이상한 생각을 끝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잡다한 생각은 멈추고

다시 <이섭의 연애>로 일단은 갑니다.



비 오는 어린이날,

오늘 하루는 썩 괜찮았고

많이 노력했고

충분히 행복했으니.

나도 나를 위한 시간을.


:-)



https://naver.me/GcW3xfP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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