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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몬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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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9. 2024

너를 향해

등 뒤에 드리웠던 거친 손은

희수의 손목을 낚아채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은 겉으론 부드러워 보였지만

실제 손아귀힘은 대단했다.

뿌리치고 싶었지만

평생 운동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희수는 맥없이 그 힘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주변 시선을 의식하느라 고개를 연신

좌우로 돌리면서도 희수를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사람,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서라면

희수를 창밖으로 밀어내기라도 할 사람.


우진의 어머니였다.

아니, 어머니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웠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그녀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희수에게

꾸준히 무례했다. 무례하다고 말하면

‘무례하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였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정말 ‘상‘스러웠다.


희수는 아직도 기억한다.

첫인사를 드리기 위해 우진의 집에 갔던 날을.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맘에 입은 치마가 불편해

계속 다리를 고쳐 앉자,

“얘, 너는 뭐 그렇게 불편한 옷을 입고 왔니?

보는 사람 불편하게? “

라며 희수를 나무랐다.


“키가 크긴 크네. 근데 인물은 없다. 우진아.”

“아버님은 버스 기사 하시고, 어머니는 그래, 뭘 하신다고?”

“그 형편에 대기업 들어갈 정도면, 뭐 열심히는 살았네.”

“근데 여자 억척스러운 거 별론데.”


하며 온 갖가지 말을 뱉어대며

희수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이렇게 사람 앞에서 대놓고 평가를 한다고?

말 문이 막힐 정도의 몰상식한 사람을 대하면

어떤 대꾸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아프게 겪어내 알게 된 것이겠지만.




그 목소리, 그 눈빛은 여전했다.

심지어 사람을 무시하는 그 말투,

제 아들은 세상에서 제일 잘 났고,

그 옆에 있는 너는 세상에서 제일 볼품없다는

그 말투는 아주 잠시 멍했던 희수의

귓가에 깊이 내리 꽂혔다.

순간 희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 손 놓고 말씀하세요! “



일부러 소리 지르듯 크게 말한 것은

의도된 행동이었다.

순간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 됐다.



어차피 불리할 게 없는 싸움이었다.

도리어 그쪽이 불편하고 어려울 게 뻔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그녀는

결혼식에 사돈의 팔촌까지 불렀으리라.

우리 아들이 대기업을 다니다가 이렇게

좋은 곳에서 결혼을 한다고 자랑을 했으리라.

그 자랑의 클라이맥스에

사람들에게 흠잡힐 일은 하면 안 되었으니까.

이미 흠이 될 수 있는 ‘희수’는 진즉에 없애 버렸으니까.

당황한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연신 미소를 에게 한 마디 더 쏘아붙이고 싶었다.



“제가 못 올 데 왔나요? 회사 동료 결혼 축하 해주러 왔는데

뭐가 문제예요? 둘 다 제 동료예요. 같은 부서, 같은 팀. 동료.

아시잖아요. 어머니? “



분해서, 억울해서 죽을 것 같은 눈빛으로

희수를 째려보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어찌나 세게 잡아채었었는지

희수의 손목에 붉은 자국이 남기까지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물러설 수 없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든 것은

그쪽이었다.



어디로 갈까, 어디를 먼저 갈까.



고민할 겨를도 없이

발걸음은 그를 향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손님을 맞이하며

홀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우진을 향해.



천천히, 하지만 정확히

희수는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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