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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몬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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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28. 2024

좌절

소은의 이야기

아무도 없는 집은 적막했다.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소은에게는 아주 작은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꼭 죽어가는 사람처럼.



똑- 똑- 또오옥- 



이따금씩 떨어지는 물방울만이

이곳이 가상세계가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돌아갈 수 없다.]




며칠간 이곳에서 지내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이었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일어날 것 같은 일은 

소은에게 생기지 않았다. 




잠을 자면 현실로 돌아갈 거야,

라고 굳게 믿고 잠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돌아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소설 속 주인공에게나

일어나는 것이었다.




'하윤이는 지금 뭐 하고 있지?'

'자다 일어나서 엄마가 없으면 펑펑 우는 녀석인데.'

'갈 수는... 있을까?' 




여전히 소은의 곁에서 소은을 지켜주고 있지만

어쩐지 이상하게만 바라보는 것 같은

재현이 출근하면, 소은의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생각이 감당이 되지 않을 때면

어디곤 나가서 걸어 다녔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는 그저 조금만 자유롭고 싶었을 뿐인데.

그냥 다른 평범한 엄마들처럼

그날 유난히 힘들었을 뿐인데.

그래서 아주 잠깐 하소연을 한 것뿐인데.




감정이 끓어 올라 걷잡을 수 없을 때면

눈에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아무 커피나 한 잔 시켜

그렇게 멍하게 넋 놓고 몇 시간이고 보내곤 했다.




누군가에게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가슴 터질듯한 답답함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이었다.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간 풍선이

언젠가 터지고야 마는 것처럼

소은의 마음은 늘 그렇게 아슬아슬했다.

누군가가 건들면 터질 것 같은. 

하지만 누구도 건들지 않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데!!!!!"




가득 부풀어 오른 풍선을 먼저 건든 것은

재현이었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는 여자였다.

그동안 한 번도 소은의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싸워도 금세 마음 정리하고

대화로 풀어냈던 둘이었다.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청소를 해야 풀린다며

온갖 짐을 다 꺼내놓고 정리하던 여자였다.




그런데 하루아침 사이에 소은이 달라졌다.

부지런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멍하게 있는 날이 많아졌다.

재현이 부르면 대답을 하긴커녕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 당황하게 만들었고,

일하던 중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이름 모를 동네의 한 경찰서였다. 




"왜 그러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구는 건데!!!"




한 번도 큰소리치지 않던 재현의 목소리는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아니, 왕자님을 만나 '제가 당신을 살렸어요!'라고

말하고 싶던,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 같기도 했다.




소은은,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사실 2024년에서 왔고

우리는 딸이 있고

내가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해서

여기 이렇게 왔어.

다 내 잘못이야.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 없어.

그래서 나도 미치겠어.



하지만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재현이 이해해 줄 리 없었다.

소은에겐 한없이 다정했지만

재현 본인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어야만

다음으로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분명, 이해한다는 거짓 눈빛조차

보내지 못하리라.




그때였다.





딩동- 딩동-




누군가 집을 찾았다.





사진: UnsplashTomas Jasov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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